물가 관리 ‘새마을 운동’때로 U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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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에서 칼국수집을 하는 A씨는 요즘 속앓이가 심하다. 충남도청에서 칼국수 값을 90원 이상 올리지 말도록 권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밀가루 값이 60% 이상 오른 데다 수도료 같은 공공요금도 올랐다”며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형편인데 관청 눈치가 보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13일 천안시 갤러리아백화점 앞에서는 시 주도로 ‘기초물가 안정 캠페인’까지 열렸다.

정부의 물가대책이 1970년대 ‘새마을운동’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

충남도청은 최근 칼국수 원가를 분석해 밀가루 값 인상에 따른 가격 인상은 78원(0.6%)이 적정하다고 밝혔다. 밀가루 값이 62%나 올랐지만 칼국수 가격에서 차지하는 밀가루 비중이 4.5%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충남도청은 이 같은 ‘요금 원가 분석 검증제’를 다른 품목에도 확대할 계획이다.

충남도청 관계자는 “업소들이 구체적인 원가 개념 없이 주 재료 구입 가격에 따라 소비자 가격을 터무니없이 인상해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며 “부당하게 인상된 가격을 현장지도를 통해 자율적으로 내리도록 하고 불응하면 시·군과 공조해 강력한 행정지도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한술 더 뜨고 있다. 지난 6일 충남도청의 원가 검증을 모범 사례로 제시하며 “주 재료비 인상에 따른 원가 상승 요인을 검증한 뒤 사업자에게 요금 인하를 권고하라”고 지시했다.

상인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칼국수 값은 충남도청 권고대로라면 100원 정도 올리라는 얘기인데 4100원, 3600원 식으로 음식 값을 받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음식업중앙회 충남지회 강봉규 지도부장은 “이번에 가격이 오른 데는 과거에 값을 올릴 일이 있어도 100원, 200원씩 올릴 수 없어 수년간 올리지 않다가 최근 밀가루 값이 급등해 어쩔 수 없이 가격을 500원, 1000원 단위로 올린 곳이 많다”며 “밀가루 값만을 가지고 원가를 계산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최근 정부가 벌이고 있는 철근 매점·매석 단속이나 국세청을 동원한 물가 단속도 개발연대인 30여 년 전과 판박이다.

게다가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공공요금은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상태에서 민간업체의 가격에 대해서만 단속을 펴는 것에 대한 불만도 크다. 하수도료는 1~2월 두 달간 7.3% 올랐고, 행정 수수료는 19.5%나 올랐다. 김경환 서강대 교수는 “정부가 원가를 분석해 가격 상한을 정하는 것은 개발독재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며 “시장에 맡기지 않고 억지로 물가를 잡으면 물가 인상 요인이 그대로 잠복해 나중에 더 큰 폭의 가격 상승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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