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13. 맞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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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맞선 자리에서 줄행랑을 친 필자는 가수를 못하게 하면 한강에 빠져 죽겠다고 가족에게 엄포를 놓았다.

온갖 기지를 발휘해 나의 가수 생활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어머니, 침묵으로 후원해준 둘째 균이 오빠, 그리고 고운 심성에 거짓말이라고는 모르면서도 큰오빠를 속이는 모험을 하면서까지 밀어준 큰언니 덕에 한동안 아무 탈 없이 미8군 쇼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베니 김 쇼’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간판 가수, 스타 가수가 됐다.

하지만 그 생활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또다시 큰오빠에게 발각이 된 것이다. 큰오빠가 불러 집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혜자를 이대로 뒀다가는 정말 큰일 나겠습니다. 아무래도 시집을 보내는 게 좋겠어요. 그래서 제가 맞선 자리를 마련했으니 선을 보여야겠습니다.”

이게 도대체 웬일이란 말인가! 맞선이라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하지만 큰오빠의 뜻을 거역한다는 것은 우리 8남매는 물론 어머니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결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으로 맞선 자리에 나가게 되었다. 약속 장소는 서울 명동의 유명한 제과점이었다. 내 옆에는 큰언니가, 맞은 편에는 큰오빠와 은행원이라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정말이지 죽을 맛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남자와 이야기 몇 마디 나누고 결혼할지 말지를 정하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키지 않는 마음에 마지못해 앉아 상대편 남자를 보니 괜스레 더 볼품 없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물론 세 오빠가 180㎝ 넘는 장신이었는데 이 남자는 키도 자그마하고 숫기도 없어 보이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둘째 균이 오빠처럼 키 크고, 남자다운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어릴 때부터 생각했는데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가수가 될 사람인데, 느닷없이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결혼이라니! 안 될 일이었다. 나는 옆에 앉은 큰언니의 옆구리를 찔렀다.

“언니, 나 화장실 좀….”

화장실을 가겠다며 제과점을 나온 나는 그 길로 줄행랑을 쳤다. 그때로서는 절박한 마음에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맞선 자리에서 난생 처음 보는 여자한테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붙여보고 이유 없이 바람 맞은 그 남자에게도, 철없는 동생 때문에 머리 숙여 사죄했을 큰오빠에게도, 그리고 나 대신 그 호통을 다 들었을 큰언니에게도 정말 두고두고 미안한 일이다.

그날 저녁, 나는 집으로 돌아가 정말 큰마음을 먹고 큰오빠에게 내 의사를 분명히 밝히기로 했다.

“오빠! 나 정말 노래 잘 해요. 오빠가 한번 들어보러 오세요! 나 정말 자신 있단 말이에요. 꼭 가수가 되고 말 거예요.”

내가 들어오기만을 벼르고 있던 큰오빠는 낮에 있었던 봉변만으로도 어이가 없었던지 아무 말도 못 했고, 그때까지 이 눈치 저 눈치만 보시던 어머니가 밝은 날 다시 이야기하자며 나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셨다. 그날 밤, 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큰오빠가 계속 가수 못하게 하면 난 아예 한강에 빠져 죽을 거예요!”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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