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회장 일본 찍고 ~ 중국 돌아 ~ 세계로

중앙일보

입력 2008.03.11 01:15

업데이트 2008.03.11 03:40

지면보기

종합 24면

서울 강남구 갤러리아 백화점 옆 나지막한 노란색 빌딩. 그곳이 대한민국 아이돌의 산실 SM엔터테인먼트다. SM의 명성에 비해 의외다 싶을 정도로 평범하고 소박한 건물이다. 주변에 삼삼오오 무리 지은 여학생들과 외벽에 쓰여진 ‘동방신기 사랑해’ 같은 낙서들이 그곳이 SM임을 짐작하게 할 정도다. 안 그래도 찾아오는 이가 많아 굳이 눈에 띄는 간판을 걸지 않는다고 했다. 바로 옆에는 김종학 프로덕션이 있고, SM이나 인근 JYP 소속 10대 스타·연습생이 많이 다니는 청담고등학교가 있다.

이수만(56·사진) 회장의 집무실 또한 소박했다. 한쪽 유리장엔 HOT· SES에서 신화·보아·동방신기·슈퍼주니어 등 SM 가수들이 받은 트로피 300여 개가 전시돼 있다. 이들의 연습생 시절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는 대형 패널이 그나마 눈에 띄었다.

4일 만난 이 회장은 그날 오전 일본에서 날아온 소식에 한껏 고무돼 있었다. 보아의 일본 정규 6집 ‘더 페이스’가 오리콘 위클리 차트 1위에 올라 6연속 1위를 한 것이다. 비정규 앨범까지 포함하면 7연속 1위다. 일본 내 최고 인기 가수 하마사키 아유미(8연속 1위)에 이은 역대 2위의 기록. 일본 진출 7년 차인 보아의 롱런을 입증하는 낭보이기도 하다. ‘토호신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동방신기 역시 ‘퍼플 라인’으로 지난 1월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으니, 한때 주춤했던 일본 내 한류에 SM이 또다시 불을 붙이고 있는 셈이다.

이수만은 국내 엔터테인먼트계의 황제답지 않게 말을 아꼈다. 한때 ‘SM=외모와 댄스만을 내세운 아이돌 군단’이라는 비판에 받은 상처가 의외로 깊은 듯했다. 물론 이제 적어도 보아나 동방신기에 대한 가창력 논란은 없지만 말이다. 사실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이중적이다. 국내 대중음악 산업화·한류의 선봉장인 동시에, 10대용 기획 댄스음악 일변도로 국내 시장을 재편하며 승자독식 구조를 주도한 이로도 꼽힌다. 그래서일까.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에둘러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수세적 화법이 눈에 띄었다.

#일본, 높은 벽을 넘다=“SM의 한류는 1997년 HOT의 중국 진출로 시작됐지만 사실은 일본부터 하고 싶었다. HOT는 시장 상황만 받쳐줬다면 10~20년 더 갈 수 있는 그룹이었는데 안타깝다. 그때는 일본에 복수여권이 나오기 전이라 남자 연예인들의 활동이 거의 불가능했다. 상대적으로 활동이 수월한 여가수를 중심으로 SES부터 시작한 거다. 당시 일본은 록댄스에 재즈, 유러피안 테크노가 결합된 J팝이 강세였다. 우리는 일본 시장에 비어있는, 스윙 R&B 댄스를 공략했다. 2001년 첫 앨범을 낸 보아는 현지화 전략을 쓰면서 적어도 프로듀서권은 우리와 합의하게 했다. 동방신기는 보아의 남성그룹 버전으로, 5년 이상씩 훈련시켰다. 동방신기는 우리 곡 ‘허그’로 데뷔했고 ‘퍼플 라인’도 작곡, 안무, 뮤직비디오 등을 전부 우리가 했다. 일본 측 파트너가 있지만, 점차 우리의 음악적 발언권을 높여가는 것이다 .”

#아시아 1등으로 세계 1등을=“중국에서 발굴해 우리가 역수출한 장리인이 지난달 중국에 정식 데뷔했다. 1단계 한류에서는 우리 스타들이 외국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이제는 그가 꼭 한국 사람일 필요가 없다. 사실 우리가 자꾸 외국으로 가는 것은 회사의 생존 때문이기도 하다. 불법 다운로드로 국내 음악시장이 죽고 TV 광고 수익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글로벌 진출이 유일한 해법이다. 물론 최후의 목표는 새로운 할리우드인 중국이다. 한국과 일본이 중국이라는 멜팅 폿(melting pot)에서 만나, 아시아 1위가 할리우드나 유럽 1위와 겨루는 것이 궁극적인 꿈이다. (보아의 미국 진출설에 대해서는) 단지 사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자긍심의 문제니 신중하려고 한다. 한 단계 진화가 가능할 때, 성공 가능성이 있을 때 나간다.”

#우리를 아이돌 제국이라 부르지 말라=이수만은 70년대 대학생 가수로 출발해 제작자로 변신한, 가수 출신 제작자의 선두주자다. 90년 국내 최초의 힙합가수 현진영을 선보인 데 이어, 작곡가 유영진과 함께 SM을 세우고 걸·보이 댄스그룹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일본 모델을 벤치마킹해 10대 초반부터 춤·음악·외국어 등을 가르치며 스타로 키워내는 아이돌 시스템도 체계화했다. 5년여의 준비기간 동안 연골이 부서질 정도로 춤을 추었다는 동방신기는, 백댄서는 줄이 틀려도 동방신기는 칼같이 줄을 맞추며, 한국어를 쓰면 벌금을 매기는 외국어 교육, 찜질방에서 손님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게 하는 담력훈련을 거친 것으로 유명하다.

SM은 스타상품을 통한 원소스 멀티유즈의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HOT 때부터 멤버들과 관련된 각종 부가상품을 선보였고, 지난해에는 자회사 SM픽처스를 통해 슈퍼주니어 전원이 출연한 영화 ‘꽃미남연쇄테러사건’도 내놨다. 출연료 부담이 없으니 제작비가 9억여원에 불과했다. ‘오빠’와 관계 있으면 무엇이든 사고 또 사며 SM의 무한시장이 돼준 열렬 팬덤도 SM제국의 한 축이다.

SM은 매니지먼트, 드라마·영화 제작, 노래방 등 40여 개 부문으로 사업을 넓히고 있으며 하반기에는 최초의 뮤지컬 ‘재너두’도 선보인다. 2000년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는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되기도 했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 ‘재벌닷컴’ 조사에 따르면 이수만은 박진영· 배용준에 이어 연예계 주식부자 3위였다.

“가수 시절, 레이프 가렛이나 뉴 키즈 온 더 블록 등 해외 팝스타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존심이 상했다. 우리가 열광할 우리 스타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 경제가 좋아지면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리라는 것은 당연했고.”

“SM에 비판과 안티가 많은 것을 안다. 가령 ‘립싱크 10대 가수들로 음악시장을 말아먹었다’ 같은 것이다. 하지만 대중문화 시장은 민주주의와 똑같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찍듯이, 좋아하면 음반을 사줘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음악이 존립할 수 있다. 또 자본주의 연예시장에서 결국 진짜 스타는 시장에서 1위를 하고, 돈을 움직이는 이들일 수밖에 없다.”

“우리 가수들을 아이돌이라고 부르는 데 동의 못한다. 이미 SM은 그저 아이돌 회사가 아니라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그룹을 지향하고 있다. 또 아이돌이 뭔가. 그저 나이가 어리면, 춤을 잘 추면, 어린 팬들이 좋아하면 아이돌인가. 지금 동방신기의 팬들은 30~40대가 많다. 요즘 우리 사무실 근처에 아저씨가 많이 보이는데, 대부분 소녀시대 팬들이다. 아이돌이다 뭐다 해서 상대를 규정하기보다, 삶의 활력소로 가볍게 즐기는 거, 그게 대중문화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발굴하고 교육할 때 인성을 가장 중시한다. 인사를 잘 해라, 겸손해라, 대기실에서 후배한테라도 자리를 내주라고 강조한다. 그래야 강훈을 견디고 오래 간다. SM의 성공 비결? 그저 하나님이 내게 아이들을 갖다 주시는 것 같다. 아이들을 내게 맡기고 한번 해봐라 하시는 거다. 그렇게 보면 인복이 성공비결이겠다.”

글=양성희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