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돌린’ 베트남 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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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중국, 30년 전 한국을 생각하라… ‘리틀 차이나’가 깨어난다… 인구의 절반이 20대 이하인 젊은 국가를 주목하라….”

1년여 전쯤 베트남 시장에 대해 쏟아진 찬사다. 임모(29)씨도 이런 말에 혹해 2007년 초 베트남 펀드에 투자했다. 그러나 얼마 후 베트남 펀드의 수익률은 곤두박질했다. 임씨는 지난달 말 원금의 5분의 1을 까먹은 채로 펀드를 환매했다. 임씨는 “목돈이 필요해 손실이 크지만 환매할 수밖에 없었다”며 “수익률만 보고 돈을 몰아 넣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했다.

장밋빛 전망에 휩싸여 베트남 펀드에 몰려갔던 투자자들이 1년 새 수익률 급락으로 심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인도 등에 분산 투자한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베트남에 ‘올인’한 투자자들은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에 비해 사정을 잘 알기 어려운 해외 펀드에 ‘올인’ 투자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고 말했다.

◇베트남 투자자들 가슴앓이=베트남 주가지수인 VN지수는 지난해 3월 최고가(1170.67)를 기록한 이래 등락을 반복하다 2007년 10월부터 본격 하락세로 돌아섰다. 5일엔 580.54를 기록하며 1년4개월 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1년도 안 돼 지수가 반 토막 났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베트남 펀드가 기록한 평균 수익률은 -10.9%. 급락했다던 중국 펀드가 -1.1%로 선방한 것에 비하면 심란한 수준이다. 베트남 펀드의 원조 격이랄 수 있는 한국투신운용의 ‘한국월드와이드베트남적립식혼합1’ 펀드의 1년 수익률(10일 현재)은 -33.8%에 달한다.

베트남 증시의 조정은 예고된 바였다. 국내 베트남 펀드가 처음 출시(2006년 6월)될 당시 베트남 증시 전체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도 못 미쳤다. 그런데 국내 펀드가 끌어모은 자금만 1조원을 웃돌았다. 베트남 개인들도 주식 투자 열풍에 휩싸이면서 주가는 치솟았다.

그러나 제값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플레이션 압력에 돈줄이 말랐다. 12년래 최고치로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 베트남은 올 1월, 3년 만에 기준 금리를 올렸다. 기관과 외국인이 주식을 팔면 이에 놀란 개인들은 투매로 대응, 지수 하락을 재촉했다.

6일 베트남 정부가 증시 부양책을 내놓으면서 급락세는 진정됐다. 베트남 정부는 이날 베트남투자청(SCIC)을 통해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유동성 흡수를 위해 추진하던 13억 달러 규모의 금융증서 발행 계획을 취소하고 외국인 투자 한도도 확대할 방침이다. 부양책 덕분에 베트남 증시는 10일까지 사흘 연속 상승해 13.4%나 올랐다.

◇수익률 좇는 투자는 위험=오랜만의 반등에 투자자들의 얼굴이 펴졌지만 손실 폭은 여전히 크다. 전문가들은 성급한 환매보다는 장기 투자를 권하지만 자산이 쏠렸다면 배분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투자자들은 그럼에도 여전히 수익률을 좇아 투자한다. 메리츠증권이 펀드 수익률과 수탁액 증감을 조사한 결과, 투자자들은 여전히 수익률이 높았던 펀드를 좇아 투자하는 ‘뒷북’ 성향을 나타냈다. 박현철 연구원은 “뒷북 투자로는 성공할 수 없다”며 “자산 배분을 통한 장기적 관점의 투자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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