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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돈 20억 든 ‘국가지도집’ 곳곳 오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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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한민국 국가지도집' 22쪽의 동해선 철도는 2005년 12월 군사분계선 이남인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제진까지 복구됐음에도 군사분계선 이북인 온정리까지만 개통된 것으로 표기돼 있다.

국토해양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원장 손봉균)이 만든 ‘대한민국 국가지도집’(이하 지도집)이 부실 제작 의혹을 사고 있다. 뒤늦게 첨부한 정오표에도 빠진 오류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제본까지 부실해 입수한 지 사흘만에 편철이 갈라졌고 그 내부는 폐지로 덧대어 있었다.

영토 경계를 시대순으로 표시한 6쪽에서 고조선이 빠진 채 5세기 삼국시대부터 등장한다. 지도만 보면 한국사는 1600년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선 초ㆍ중ㆍ고교 교과서 사회과부도가 모두 고조선부터 시작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경선을 잘못 표기해 멀쩡한 우리 영토를 외국에 넘긴 곳도 있다. 2쪽 ‘대한민국 영상지도’는 한반도 최서단인 압록강 하구 비단섬 일대를 중국령으로 표기한 것이 발견된 데 이어(중앙일보 2월 28일자 14면 보도), 14쪽 백두산 지도는 국경선을 잘못 그어 양강도 삼수군 압록강변 일부지역을 중국 영토에 포함시켰다.

철도의 경우 개통된 노선은 미개통으로, 미개통 노선은 개통으로 잘못 표기했다. 21쪽 서울 지도에서 경의선 철도 복구 구간의 역들이 빠져 있다. 강릉 지도에서 남ㆍ북이 2005년 12월 강원 제진까지 복구한 동해선은 여전히 온정리에서 끊어져 있다.

현재 건설 중인 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 구간은 점선으로 표기해야 함에도 개통된 것처럼 표기했고 대구시내 구간의 노선도 실제와 달리 직선으로 그어 놓았다. 152쪽에선 아직 완공되지 않은 전북 김제공항이 등장한다.

14쪽(지도명 ‘백두산’·사진 오른쪽)의 경우 실제 국경선은 바깥쪽(파란 선)이지만 지도에서는 국경선이 안쪽(붉은 선)으로 후퇴해서 그어 일부 영토를 중국령으로 표시해놓았다.

잘못 적은 지명도 많다. 임진강역은 ‘임진각역’으로, ‘낚시의 메카’로 불리는 ‘역만도’는 ‘적만도’로 적었다. ‘내변산’은 산(山)을 가리키는 기호와 함께 적혀 있다. ‘내변산’은 변산반도 안쪽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전남 무안은 같은 지도에서 두 군데나 표기돼 있다. 한 곳은 ‘전남도청’으로 표기해야 옳다. 대구와 대전 등 광역시청과 도청이 함께 있는 곳도 기호를 각각 표기해야 하는데도 하나씩만 표기해 놓았다. 또 ‘대구’는 경북도청 기호에만 적혀 있다. 여기엔 ‘경북도청’이라고 적고 대구시청 자리에 기호를 추가해 ‘대구’라고 적어야 한다.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외래어 표기법을 무시한 곳도 있다. ‘세계 속 한국’ 코너의 세계 지도에 표기된 ‘스페인’ ‘대만’ ‘호주’는 각각 ‘에스파냐’ ‘타이완’ ‘오스트레일리아’가 맞다.

지리정보원은 지도집 제작을 위해 공청회를 한차례도 열지 않았다. 정부 각 부처가 생산한 자료를 검증도 하지 않은 채 끌어다 썼다. 다른 일반사업과 마찬가지로 입찰에 부쳐 민간단체인 대한지리학회에 용역을 맡긴뒤 검수 역할마저 제대로 하지 않았다. 손봉균 원장은 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적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해봐야 한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하면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14일 배포된 지도집은 2년간 19억6300만원의 예산을 들여 국문ㆍ영문 각 1500부씩 제작됐다. 1부당 제작비만 60만원이 넘는다. 5일 현재 국문판 650부, 해외에 영문판 700부가 배포됐다. 지리정보원은 지도 배포에 앞서 “영토분쟁에 대비하고 구글어스 등에서 잘못 표기된 백두산과 동해의 표기를 바로잡기 위해 국가지도집을 발간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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