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비만 초기에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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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어린이 비만은 유년기 ‘악몽’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에서 1965∼71년생 875명을 1994년까지 추적 관찰한 결과 6∼9세 때 비만아가 비만 청년으로 자랄 확률은 55%나 됐다. 같은 나이에 정상 체중이었던 아이가 자라서 비만이 될 위험보다 10배나 높았다.

우?ざ?초등학생 비만율은 18.3%(2005년)로, 어린이 비만(BMI 25 이상)이 이제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자녀를 비만에서 탈출시키려면 달고 기름진 음식을 가능한 한 적게 먹여야 한다. 하지만 먹는 문제로 자녀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가하는 것은 옳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단맛을 선호하고, 지방이 풍부한 음식에 열광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또 어린이는 열량이 높은 식품을 즐겨 먹도록 ‘설계’돼 있다. 고열량 식품이 어린이의 성장을 돕기 때문이다.

자녀의 비만이 걱정된다면 다음 다섯 가지 전략이 유효하다.

첫째, 단맛을 그저 그런 맛으로 여기게 한다.

미국의 영양학자 엘린 새터 박사는 『자녀를 잘 먹이는 법』이라는 저서에서 “자녀에게 캔디·청량음료·쿠키를 먹도록 허용해야 한다. 지나친 금기는 강한 집착을 부른다”고 강조했다. 단 음식을 식사의 일부로 생각하도록 해야지, 특식이거나 좋은 행동을 했을 때 받는 포상으로 여기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밥 공기를 다 비우면 아이스크림’, ‘오이무침 먹으면 초콜릿’ 같은 보상은 어린이의 단 음식에 대한 갈망만 높일 뿐이다.

둘째, 채소가 친숙하게 느껴지도록 자주 식탁에 올린다.

어린이가 채소를 싫어하는 것은 만국 공통이다. 이들은 ‘새것 혐오증(neophobia)’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새 음식에 대한 공포는 2∼6세 때 극에 달한다. 여기에도 인간의 생존 본능이 작용한다. 과거엔 어린 생명도 스스로 자연의 독성물질을 가려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새것 혐오증’은 반복적인 노출을 통해 치유 가능하다. 채소를 식탁에 자주 올려 맛보게 하면 아이의 거부감은 차츰 누그러든다.

셋째, 자녀가 좋아하는 음식에 채소를 ‘표시 안 나게’ 집어넣는다. 햄버거에 버섯·양파, 비빔밥·주먹밥·볶음밥에 당근·우엉·호박 등을 다져서 넣는 것 등이 좋은 예다. 채소 숨기기로 3∼5세 아이의 열량 섭취를 20% 가까이 줄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넷째, 초등학생 자녀라면 장보기·요리에 적극 참여시킨다. 주부가 자신이 조리한 음식을 잘 버리지 못하듯 어린이도 직접 사서 만든 음식엔 특별한 애정을 보인다. 초등학생이 학교나 인근 농가에서 직접 작물을 재배하게 하는 일본의 식육(食育)도 어린이의 채식 선호도를 높였다.

다섯째, 자녀에게 영양교육을 하되 내용이 ‘토마토는 네 건강에 좋으니까 꼭 먹어야 돼’ 등 강권 일색이어선 안 된다. 이는 토마토 등 채소나 과일을 기피하게 한다. 이보다는 “토마토는 맛이 기가 막혀”가 더 효과적이다. 영양 교육에서 효과 만점인 것은 부모의 본보기다. 부모가 자녀 앞에서 감자칩·햄버거 등 패스트 푸드나 과자·사탕 등 정크 푸드를 즐겨 먹으면 아이는 그런 식품의 섭취를 당연시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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