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피마길/피마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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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조선조 때 지금의 세종로는 육조(六曹) 거리였고, 종로는 장사를 하는 시전 거리였다. 서민들은 종로통에서 고관대작과 마주치면 절을 하느라 한나절이 지나도 못 지나갈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이 타고 다니는 말을 피하기 위해 지름길로 다닌 게 피맛길이었다. 그 일대를 피맛골이라 한다.

“피마길에서 뻗어 나가는 실핏줄 같은 골목길에는 21세기에도 ‘날개’ 속의 집들이 허다하다” “비가 오면 피마골의 빈대떡이 생각난다”처럼 ‘피마길, 피마골’로도 많이 쓰지만 이는 바른 표기가 아니다.

‘피맛길(골)은 피마(避馬·말을 피함)+길(골)의 형태’로, 한자어와 순우리말의 합성어다. 한글맞춤법 제30항에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난 경우,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것은 사이시옷을 받쳐 적는다’는 규정에 따라 ‘피맛길, 피맛골’로 표기하는 게 맞다. [피맏낄/피마낄(피맏꼴/피마꼴)]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피맛길은 장구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여 온 서민의 애환이 골목 곳곳에 녹아 있다” “최근 들어 피맛골 일대에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처럼 쓸 수 있다.

참고로 ‘제사상, 마구간, 수라간’ 등은 한자어로만 된 말이기에 사이시옷이 들어가지 않는다.

권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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