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대란 … 값 뛰자 유통업체 공급 늦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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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아파트를 짓는 S건설은 바닥 공사에 들어가는 철근이 부족해 공사를 일시 중단했다. 철근 가격이 날마다 급등하자 돈을 더 받으려는 철근 유통업체들이 공급을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판교 신도시에서 아파트를 건설하는 B건설도 공정률을 제때 달성하는 게 불투명해졌다. 이 건설사의 김은만 현장소장은 “철근이 부족한 데다 가격도 뛰어 공사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치솟는 철근 가격을 잡기 위해 지식경제부·국세청·지자체가 공동으로 단속에 나선다.

정부는 11일부터 고철과 철근을 매점매석행위 품목으로 고시하고, 적정 수준 이상으로 재고를 갖고 있는 업체를 처벌하기로 했다고 9일 밝혔다.

7개 전기로업체 등 생산업체와 250개 유통업체는 단속시점 직전 30일간 평균 재고량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0% 이상 많으면 사재기로 처벌받는다. 건설업체는 단속시점 직전 18일 총사용량보다 더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 처벌받게 된다. 매점매석으로 판단되면 정부는 일단 시정명령을 내리고, 그래도 개선이 안 되면 고발해 5000만원 이하 벌금이나 2년 이하 징역형에 처한다.

정부의 강경조치는 최근 철근 가격 급등이 유통업체·건설업체의 불공정 행위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2월 철근 소매가격은 지난해 말보다 29.2%나 올랐다. 도매가격이라 할 수 있는 공장도 가격상승률(23.9%)을 훌쩍 뛰어넘었다.

손해용 기자

뒷북 행정
작년 말부터 사재기 극성
정부, 이제서야 대책 마련

뉴스 분석 철근 대란 조짐이 시장에서 나타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철근이 부족해지자 사재기가 극성을 부렸고, 가격도 이미 오를 대로 올랐다.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미적대다 이제야 대책을 마련했다. 전형적인 뒷북 대책이다. 그나마 17일부터 단속하기로 했던 것을 일주일 앞당긴 것이다. 기획재정부 임종룡 경제정책국장은 “사재기가 한 곳에서 일어나면 다른 곳으로 파급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 상태가 오래가선 안 되겠다는 판단에 일정을 앞당겼다”고 설명했다. 공사 현장에서는 철근 때문에 수개월째 아우성인데, 정부는 단속을 겨우 일주일 앞당기는 용단(?)을 내린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철근 대란을 잠재울 수 있는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올 1월 17일과 2월 5일 두 차례나 물가안정대책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었지만 철근에 대해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철근 가격이 지난해 12월 초부터 매달 10% 안팎씩 뛰는데도 “매점매석 실태 조사에 나서겠다”는 엄포를 반복했을 뿐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판교 건설현장을 방문해 현장의 자재난을 직접 보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가 뒷짐을 지고 있는 동안 민간업체들이 앞장서 매점매석 예방에 나섰다. 현대제철은 지난달 대리점의 철근 사재기를 단속해 세 곳에 경고 조치했다. 현대제철은 적발된 업체들이 사재기를 계속하면 대리점의 권리를 박탈하고 거래를 끊겠다고 경고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2004년에도 고철 사재기 때문에 원자재 대란이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정부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며 “정부가 좀 더 발 빠르게 움직였다면 철근 가격이 이처럼 급등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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