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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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사람 「人」자를 봐라! 사람은 본래 서로 기대고 살게 마련인것이다.정신적 독립 좋아하시네! 그러나 그 때부터 정민수는 말을 잃기 시작했다.그리고 심하게 외로움을 탔다.임희경은 자기가너무 했나 하고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여왕자리를 포기할수 없었다.그리고 과거 왕권시대,아니 지금의 정치판에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파렴치하게 정권을 잡으려 하는지도 이해가 갔다.
남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은 것이다.당하는남이 어떻게 느끼든 그건 상관 할 바가 아니다.내가 좋으면 그만이다.그런데 말을 잃기 시작한 정민수의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임희경은 또다시 드러누워 버릴까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조용히 지내며 두고보기로 했다.그런데 정민수는어느날 부터인가 아예 병원문을 닫고 집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것이었다.임희경은 남편에게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임희경은 비록 남편이 돈은 벌어오지 않지만 둘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뻐 남편의공부를 열심히 뒷바라지했다.마치 의과대학 시절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그이를 기다렸던 것같이….그러나 남편은 그렇게한 달여를 미친듯이 공부하더니 어느날 문득 임희경에게 소포 뭉치를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만나서 사랑한지도 벌써 20년이 다 돼가는구려.당신을 만나 젊은 시절 너무 행복했고 그 행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소.그러나 우리의 사랑이 아무리 강하고 행복한 것이라 해도 운명만은 막을 수 없는 것같소.아무래도 당신은 당신의 길을,나는 나의 길을 가야할 것같구려.』 임희경은 내심으로는 깜짝놀랐으나 이 남자가 그동안 고단수의 수법을 연구했구나 하는 생각에 뚱하니 대답을 하지 않았다.어떻게 얻은 왕권인데 한 두마디 말에 쉽게 포기해! 그러나 정민수는 씁쓸하게 자조적으로 웃었다. 『만의 하나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나의 길을 간것이라 생각하고 꿋꿋하게 살아주기를 바라오.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예전에 나를 뒷바라지하던 것같이강인하게 키워주시오.』 이때 임희경은 불쑥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이 이는 어쩌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그래서 만의 하나 나의 왕국이 파멸될지도 모른다.그때부터 임희경은 정민수의 행동을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정민수는 평상시와 같이 하루하루를 보냈다.다른 것이 있다면 그의 모습은 사뭇 경건하여 마치 신의 뜻을 기다리는 성직자 같았다는 것이다.임희경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어느날 그 소포뭉치를 뜯어 보았다.그랬더니 그 안에는 정말 기절복통할 내용이 담겨 있었다.평생 자기 신하로 꼼짝 못하고 자기 뒷시중만 하며 살 것같았던 그이에게 애인이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더 나아가 그는 죽음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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