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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민병대와 우울한 미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5년만에 다시 돌아온 근무지 워싱턴의 봄은 여전히 아름답다.
시내와 교외 호텔들은 관광객들로 매일 만원이어서 필자도 숙소를정하는데 애먹었을 정도다.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나타나 있는 표정일 뿐 실제로 내면은 매우 우울하다.워싱턴을 포함해 미국은 지금 심각한 사회변화.붕괴조짐 앞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요즘 며칠 이곳 신문.방송은 백악관(白堊館)현관 앞을 지나가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의 통행폐쇄 여부(與否)로 시끄럽다.말할것도 없이 1백67명의 사망자를 낸 오클라호마시티 폭탄테러사건에 따른 진통이다.
이처럼 미국인들을 불안속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이번 테러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소위「민병대」다.
현재로서는 정부 당국도 이들의 현황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이들의 구성.이념.참여폭이 州마다 다르다.어떤 조직은 구성원이 노동자들인가 하면,어떤 것은 그룹마다 다르다.
수사당국과 관련단체들이 대충 파악한 것에 따르면 민병대는 전국 34개州에 2백4개가 구성돼 있고,이중 1백80개는 군병력처럼 무장돼 있어 폭력행사의 가능성이 크다는게 최근 보도 내용이다.구성원은 적게는 1만명,많게는 10만명에 이 르는 것으로추산되고 있을 뿐이다.우려되는 요소가 또 있다.컴퓨터의 인터네트.팩스.단파.송수신 장비등을 갖춤으로써 기동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강의 정규군을 보유하고 있고 가장 민주화된 정부임을 자부하고 있는 미국사회에 도대체 어떤 자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같은 과격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가.
확실한 것은 이들은 자신들이 정부부패와 직권남용의 희생자들이라고 생각한다.무장한 수사요원들이 범죄혐의를 받는 시민들을 수색할 때 과잉폭력을 사용하고,때로는 양민까지 살해하고 있다고 이들은 분개한다.기본적으로 이들은 정부가 美헌법을 와해시키려는음모를 추진중이며,자신들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봉기하는 전초선(前哨線)이라고 자임한다.클린턴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라는 사랑하나 정부는 증오하는 세력」이다.
걱정되는 사회현상의 하나는 상당히 많은 시민들이 이들의 일부인식에 동조하는 점이다.최근 갤럽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반 사람들의 상당수가 자신들의 권리와 자유가 비대해진 정부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보수파의 39%,진보 파의 42%가그런 생각이다.이쯤 되면 이는 사회 전체의 편집(偏執)증세라고워싱턴포스트紙는 꼬집었다.
무엇이 이들을 여기까지 몰아가고 있는가.물론 미국은 민병대가생소하지 않다.미국은 식민지시절부터 독립을 저지하거나 치안에 위해로운 세력에 대해 스스로 무장 민병대를 구성해 자신들의 존엄성을 적극 방어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민병대는 일종의 半경찰,半군대였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독립전쟁 당시의 민병대를 흉내낸 과격폭력세력의 테러행동이 돌출하고 있는가.
미국사회는 지금 주야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서둘러 찾아내기 위해 부산하다.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사회제도가 붕괴현상을 보일 때 불만처리를 위해 제도밖으로 뛰쳐나가 희생양을 찾아낸다고분석하는 의견도 있다.도의상실,가족제도의 붕괴, 기동성의 증대,정보의 범람등 많은 요인들이 지적되고 있다.흔히 종말론(終末論)이 횡행하게 마련인 세기말(世紀末)현상이라는 풀이도 보인다.냉전종식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는 新세계질서론도 제기된다.
더이상 명백한 적(敵)이 없어짐에 따라 세상 제(諸)문제에 관한 비난대상이 불분명해졌다는 것이다.테러희생자는 그 대안일 뿐이라는 분석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돈의 시대다.남의 일같지 않아 우울할 뿐이다. 〈美洲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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