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커플발레 시대 막내리고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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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마곳 폰테인과 루돌프 누레예프,수전 페럴 피터 마틴스.세계 발레팬들이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와 뉴욕시티발레단등 여러 발레단의 공연을 볼 때마다 아쉬워하는 환상의 발레 커플들이다.
20세기들어 발레가 최고의 인기 예술 장르로 부상하는데 기여했던 환상의 커플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상대방의 심경 변화와신체 구석구석의 오묘한 곡선을 연인 이상으로 정확히 읽어내는 이 신기(神技)의 커플들이 떠난 자리를 채울 후 계자들이 나타나지 않아 발레팬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현재의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한테서는 타고난 무용수로서의 예술적 감각보다는무용을 커리어로 생각하는 인상이 짙을 뿐이다.
그나마 14년간 신기의 커플의 명맥을 잇던 히서 와츠와 잭 소토 커플마저 와츠가 뉴욕시티 발레단을 떠남으로써 지금은 커플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무용수들이 없는 실정이다.그 때문에 뉴욕시티 발레단에 남은 발레리노 소토는 최근 개막된 봄시즌공연에서발레단의 이 무용수 저 무용수를 번갈아가며 애정없이 공연하는 떠돌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이렇게 되자 안무가들이 예전에 스타 무용수들이 차지했던 명예를 대신 누리게 됐다.
그래도 발레팬들은 파트너십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애써 위로하려 든다.알레산드라 페리와 줄리오 보카커플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주요 멤버인 이들은 지난달 24일 『지젤』에서 순박한 농촌소녀와 연인을 차버린 귀족으로 출연,각광을 받았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현재 활동중인 남녀 무용수중에서는 마곳 폰테인과 루돌프 누레예프의 신화를 깨뜨린 인물은 잡히지 않는다.폰테인과 누레예프 커플은 여러면에서 운명적이었다.누레예프가 서방으로 망명하던 지난 61년 폰테인이 먼저 짝을 이루자고 제안함으로써 이들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됐다.누레예프는 폰테인에게 전성기의 예술표현력을 되살려줬을 뿐 아니라 로열 발레단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이들이 짝을 이룬 것은 누레예프가 조국을 떠난 2 0대 망명객 신세였고, 그보다 19년 연상이던 폰테인은 발레계에서는 한물간 발레리나로퇴물취급당하던 때였다.
그후 폰테인이 무대에서 은퇴하던 70년대 말까지 이들 커플의공연은 늘 흥행이 보장됐다.이들의 성공비결은 완벽한 기교에 있었다기 보다는 완숙한 발레리나와 혈기왕성한 청년의 투박함이 이뤄내는 팽팽한 긴장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그들 이 가장 인기를 끌었던 작품 『코르세어즈』(해적선)에서 소녀와 해적으로 그들의 표현력이 가장 극명하게 표현된다.
이들 전에 인기를 끌었던 영국의 알리샤 마코바와 앤튼 돌린 커플이 천상의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성공했다면 폰테인과 누레예프커플은 거기에다 황홀감을 불어넣는데 성공했다는 평이다.
이들 외에도 린 세이머와 크리스토퍼 게이블 커플은 동양의 양과 음의 조화로 높이 평가받았다.또 안투와네트 시블리와 앤터니도웰은 「천상의 쌍둥이」라 불릴 정도로 두 사람의 신체선의 결합이 절묘했다고 한다.그러나 폰테인과 누레예프의 평가에 비하면이들도 무색해진다.폰테인과 누레예프는 각자가 지닌 특유의 개성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파트너십도 발휘하는,한마디로 신의 기교였다고 한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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