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2000>24.단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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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처럼 옷보다 단추가 더 비쌌던 때도 있었다. 어릴때 이미 31개의 루비단추가 달린 옷을 입었던 프랑스의 루이14세는 1686년 단추가격만 총 60만달러에 달하는 옷을 맞추기도 했다.
「프랑스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수아 1세는 윗도리에 무려 1만3천6백개의 금단추를 달았고 영국여왕 엘리자베스1세는 장갑에 48개의 금단추를 달았듯이 초기의 단추는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우리 한복중에서 마고자를 종종 「오랑캐옷」으로 부르는 이유는몽고족의 영향으로 「단추」(매달린 추라는 뜻으로 단추의 어원)가 처음 적용된 탓도 있지만,이 단추가 「금단추」니 「호박단추」니 하며 곧잘 사치로 흐르곤 하는 천박한 세태 때문일 성 싶다.옷을 여미거나 푸는 데 사용하는 단추류(Fastener)의역사는 기원전 6천년전 이집트시대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그당시의 단추는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아니라 두개의 옷자락을 동물뼈나 금속핀등으로 끼우는 형태였고 기원전 1세기께돼서야 브로치처럼 두개의 금속고리를 연결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이후 둥근 구슬형태의 금속류를 루프형태의 고리에 끼우는 단추도 등장했는데 그 모습이 새싹의 봉오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라틴어로 「Bouton」이라 부른 것이 오늘날 「버튼」(Button.단추)의 어원이 됐다.
동양에서는 6朝시대(AD5~7세기)들어 옷감을 매듭지어 둥근형태로 만든 뒤 이를 루프에 끼우는 방법이 등장했다.그 모습이잠자리의 머리모양과 비슷하다 해서 「청령두」라 부른 이 단추는이후 5개(5行 또는 5德을 의미)로 늘어나 면서 중국인의 보편적인 의복형태가 됐고 우리나라에도 전래돼 「매듭단추」가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 인체에 대한 관념이 「숨겨야 되는것」에서 「나타내야 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단추는 의복을 입고도 인체의 곡선을 잘 나타내게 하는 결정적인 수단으로 변모,의복의 필수품으로 발전하게 됐다.
이 당시 옷중에는 인체를 드러내기 위해 구멍이 숭숭 뚫린 레이스옷도 많았고 이에따라 단추고리 대신 레이스의 구멍에 단추를끼우는 방식이 자연히 발견돼 오늘날처럼 한쪽옷깃에 단추구멍을 내고 여기에 단추를 끼우는 방식이 시작됐다.
남자옷은 오른쪽에,여자옷은 왼쪽에 단추를 매다는 현재의 방식을 놓고 어떤이는 『오른손잡이가 품속에 숨긴 칼이나 총을 꺼내기 쉽게』라는 유래설을,심지어 어떤이는 『이성(異性)끼리 서로옷을 벗겨주기 쉽게』라는 설명을,최근에는 『감정 과 이성으로 나뉘어 있는 대뇌의 좌우부분이 성(性)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지만 모두 명확치는 않다.
단추는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를 이용한 금속단추의 제조기술(1770년 독일의 위스터가 발명)이 발전되고 플라스틱의 발명(1905년 베이클랜드)으로 쇠뿔.조개껍질등과 같은 천연재료를 대체하면서 오늘날과 같이 대량생산이 이뤄지게 됐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마고자.철릭(무관 공복(公服)의 하나로 허리에 주름이 잡히고 큰 소매가 달렸음)등과 같은 옷에 부분적으로 단추를 사용하다 갑오.을미개혁으로 단추가 확산됐다.이후 1937년 설립된 유창양행을 중심으로 단추산업이 발전,한때 세계시장의 40%까지 차지했으나 최근에는 동남아국가등의 추격을 받고 있어 고부가가치제품의 생산을 추진하고 있는 상태다.
李孝浚기자 ◇도움말▲이화여대 의생활학과 조규화(曺圭和)교수▲㈜세경 상품기획실 이재광(李在光)대리 〈다음회는 잠수기술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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