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3월 최악의 위기설 … "전 세계 손실 6000억 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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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가 잠시 감춰뒀던 이빨을 다시 드러냈다. 세계 1위 보험사인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AIG)은 지난해 4분기에만 이와 관련한 손실로 111억 달러를 상각했다고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다른 곳에서 낸 이익과 상쇄해도 52억9000만 달러의 적자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 회사 89년 역사에서 최악의 손실”이라고 전했다.

AIG는 불과 보름여 전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상각한 액수가 48억8000만 달러”라고 밝혔다. 순식간에 손실 규모가 두 배 넘게 늘었다. 그러나 이것도 끝이 아닐 것 같다. 이 회사 마틴 설리번 최고경영자는 아예 “시장 상황이 계속 나빠지면 추가 손실을 발표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하루 뒤인 29일 유럽 최대 은행 UBS는 세계 금융회사들의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이 최소 6000억 달러(약 563조원)에 이를 것이란 보고서를 내놨다. 지금까지 드러난 1810억 달러의 세 배가 넘는다. 최근 슬금슬금 오르던 미국 주가(다우지수)는 이날 2.51% 급락했다. 올해 들어 둘째로 많이 떨어졌다. 지난달 22일부터 나흘 동안 오른 것보다 28, 29일 이틀 동안 까먹은 폭이 더 크다.

세계 금융가에는 지금 ‘3월 위기설’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들의 분기 실적 발표가 몰려 있어서다. 대우증권에 따르면 골드먼삭스(12일), 베어스턴스·리먼브러더스(14일), 모건스탠리(20일)가 성적표 공개를 앞두고 있다. AIG와 같은 대규모 부실이 추가로 드러날 경우 세계 경제가 또 한 번 요동칠 수 있다. 대우증권 김성주 투자전략파트장은 “가장 눈여겨볼 곳은 그간 상대적으로 부실이 적었던 골드먼삭스”라며 “이 회사마저 부실 충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신용경색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UBS의 전망은 훨씬 암울하다. 이 은행 유럽 신용전략부문 책임자인 제로 샤르팽은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가 예상보다 큰 손실로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영국 금융사인 펠로튼 파트너스가 18억 달러 규모의 헤지펀드를 청산키로 하는 등 곳곳에서 사태가 악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융회사들의 자산 상각이 잇따르면서 “지나치게 강화된 회계 기준이 외려 부실을 키운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보도했다. 2001년의 엔론 회계 부정 사태 이후 기업이 보유한 유가증권을 시장가격으로 평가토록 하는 바람에 시장이 침체하면 일제히 자산 상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는 주장이다. 이는 다시 시장에 영향을 미쳐 자산 가치를 더 떨어뜨리고 기업은 또 상각을 해야 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금융사들이 산더미 같은 부실 채권을 몇 년씩 깔고 앉아 상각하지 않을 경우 1990년 대 말 일본이 겪었던 것과 같은 금융 불안이 나타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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