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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대장정>2.하바로프스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하바로프스크에 도착한 다음날 우리 취재팀이 만난 원로시인 안드레이 파사르(Andrei Passar.70)는 아직도 소비에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하바로프스크의 작가회관에서 그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모임에 갔을 때 그는 적어 도 이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문학인중 한사람이었으며 미련둘 것 없는 노년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우리가 그의 허름한 아파트를 찾았을 때 그는 빈궁한 살림살이를 보여주며 가슴속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어떻게 이념을 하루아침에 바꾸는가.사회주의에서 갑자기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그의 서재(서재라고는 할 수 없는 퀴퀴한 냄새뿐인 구석방이었지만)에는 레닌과 스탈린의 석고가 걸려있었다.
『지금은 연금도 제대로 안나온다.먹고 살 수가 없다.』 『전에는 어땠는가?』 『사회주의 시절에는 나는 글만 쓰면 되었다.
생활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그러나 지금은 내 책의 인쇄비를 벌기 위해 스스로 목각인형을 만들어 팔고 있다.이게 뭔가?』파사르는 불룩나온 배를 더욱 앞으로 내밀며 갑자기 심술첨지처럼 되었다.
『당신이 사회주의 시절에 썼던 글들은 어떤 것들이었나』고 물으려다 말았다.당신은 그 시절 당신 나라의 그 위대한 작가들처럼 인간의 문제에 천착했었는가,인간과 세계에 대해 고뇌하며 썼는가…? 속으로 끊임없는 질문이 튀어나왔으나 노인 과 속절없는논쟁이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다만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그가 이 지역의 소수민족인 나나이족 출신으로 러시아 사회에서 성공적 문학인으로 자라왔다는 사실이었다.하바로프스크 도심에서 차로 두 시간여 거리의 시카치 알렌 마 을은 바로 나나이족이 오래전부터 모듬살이를 하고 있는 지역이다.
나나이족은 몽골리안으로 부족국가를 형성해오다 중국 양(梁)나라 때 소멸된 소수 민족.간단한 명사.형용사.동사등 나나이 고유의 언어도 지녔던 민족이지만 지금은 점점 그 수가 줄어 현재2만5천명이 생존해 있다.시카치 알렌에는 3백명 이 거주하고 있으며 70명의 학생과 18명의 선생님을 둔 국민학교가 있다.
이 학교의 드론즈니나 선생은 취재팀을 위해 동네사람을 모아 나나이 민족춤을 실연해 주었다.
지금은 집집마다 텔레비전 수상기가 있고 교육받은 이들도 무수히 배출되고 있다.
글.사진=김용범〈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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