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베이징, 엄숙주의 문학 대세 … 상하이는 탈이데올로기 성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중국은 전통적으로 황허(黃河)를 중심으로 한 북방과, 창장(長江)을 중심으로 한 남방의 구분이 있었다. 중국문학사의 첫 장을 여는 『시경(詩經)』과 『초사(楚辭)』는 각각 북방의 리얼리즘과 남방의 로맨티시즘을 대표한다. 2000년이 넘는 중국문학사에서 북방과 남방은 그 지리적 환경과 결합된 독특한 문학 스타일을 형성하여 서로 갈마들면서 문학사를 구성해왔다. 이러한 현상은 북조 시대와 남조 시대를 거쳐 북송과 남송 문학의 대조로 이어졌다. 예컨대 당나라의 두보(杜甫)와 이백(李白)은 각각 북방의 리얼리즘과 남방의 로맨티시즘 문학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나온 천재였다.

20세기에 들어서도 1920년대 ‘인생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 문학연구회는 베이징을 중심으로 삼았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 창조사(創造社)는 도쿄에서 창립되어 상하이를 근거지로 두었다. 또한 경파(京派)와 해파(海派)는 좌익 문학과 함께 1930년대 중국 문단을 삼분(三分)했다. 경파가 과도한 정치 참여를 경계하면서 인민의 생활에 접근하고 인성미와 자연미를 추구한 반면, 해파는 유럽의 모더니즘과 일본의 신감각파의 영향을 받아 자본주의 대도시의 새로운 문화와 도시민의 삶을 그렸다.

베이징 지역은 정치의 중심이자 고급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베이징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체로 엄숙문학을 지향하고 있다. 정치의 중심이라는 사실은 문단의 주도권이 베이징에 있음을 의미한다. 베이징의 문학 권력은 중국작가협회를 통해 구현됐다. 종신제 비슷하게 운영되던 협회의 주석은 2006년 비로소 온전한 의미의 선출제로 바뀌었다. 당시 49세의 여성작가 티에닝(鐵凝)이 원로들을 제치고 선출됨으로써 중국의 문학 판도는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작가협회 간부로서 베이징 문단의 파워 엘리트라면, 중국 문화부장(장관에 해당)을 역임한 원로 작가 왕멍(王蒙)과 현 베이징작가협회 부주석 차오원셴(曺文軒) 베이징대 교수를 들 수 있겠다.

이와 동시에 베이징은 중국 어느 지역보다 체제에 대한 저항 의식이 강하다. 대표적인 인물로 전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 첸리췬(錢理群)이 있다. 20세기 중국 지식인의 정신사라는 맥락에서 루쉰(魯迅)를 재해석했고, 국가 권력에 의해 억압되었던 50∼60년대 문학 사상사 복원에 주력하는 체제비판적 인사다.

소설로 보자면, 베이징 소시민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른바 도시문학이 강세를 보인다. 허난성(河南省) 출신으로 베이징대 중문학부를 졸업한 류전윈(劉震雲)은 베이징 시민의 일상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성찰하는 작가다. 최근 국내에 번역·소개된 『핸드폰』은 휴대폰과 자가용,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달라진 베이징 시민의 소통 양태를 유머러스하게 제시한다. 또 왕숴(王朔)는 개혁·개방 초기 시대의 사회 사조와 탈이데올로기적인 성향의 신세대 삶을 대담하게 묘사하는 작가다. 중국 연구자 사이에 ‘80년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왕숴를 읽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산둥(山東)은 넓은 의미에서 베이징의 지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산둥엔 모옌(莫言)이 있다. 모옌은 산둥 가오미(高密)현 출신으로 그의 작품 대부분이 산둥의 낙후된 농촌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대표작 『홍까오량 가족(紅高粱家族)』(중편 ‘붉은 수수’가 수록된 연작소설집)은 30년대 가오미현에 진주한 일본군과 이에 맞서는 지역 주민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중국 경제의 심장이자 대중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하이는 베이징에 비해 개방적이고 전위적이다. 문화혁명의 이념 지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상처의 흔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상흔(傷痕)문학’과 그 상처의 원인을 반추한 ‘반사(反思)문학’의 전통이 상하이에서 시작되었다. 상하이의 대표적인 비평가로 천쓰허(陣思和) 푸단(復旦)대 중문과 학과장과 왕샤오밍(王曉明)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를 들 수 있다. 이 둘은 ‘문학사 새로 쓰기(1988)’와 ‘인문학 위기(1993)’ 등의 논쟁을 주도했는데, 천쓰허가 문학의 진정성을 수호하는 입장이라면 왕샤오밍은 대중문화를 포함한 문화 전반의 연구에 주력하는 편이다.

상하이를 대표하는 작가라면 왕안이(王安憶) 상하이작가협회 주석을 들 수 있다. 상하이 토박이로, 상하이에서의 일상을 소재로 소설로 쓰고 있다. 40년대 상하이에 장아이링(張愛玲)이란 여성작가가 있었다면 오늘은 왕안이가 있다. 상하이 인근 항저우(抗洲)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위화(余華)를 상하이 문단에서 논의할 수도 있겠으나 위화는 전국적인 작가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역사의 고도 시안(西安)은 내륙의 농촌 문화를 대변하는 또 하나의 문학 중심지다. 특히 시안을 중심으로 한 옛 상저우(商洲)지역은 중국문화의 근원지로서, 문학 쪽에선 ‘심근(尋根)문학’의 흐름과 연계되어 있다. 심근문학은 개혁·개방 시기 가치관의 혼란을 중국의 전통문화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문학 조류다. 『마교사전(馬橋詞典)』의 작가 한사오궁(韓少功)의 ‘심근선언(1984)’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안엔 1000만 부가 넘게 팔렸다는 베스트셀러 『폐도(廢都)』의 작가 자핑와(賈平凹)가 있다. 폐도는 1만 년 역사를 자랑하는 시안의 퇴락한 모습을 상징한다.

임춘성(목포대 중문과 교수·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 회장)

◇시경(詩經)과 초사(楚辭)=공자가 편찬했다는 중국 최초의 시가집이 『시경』(詩經)이다. 『시경』은 중국 시가의 경전과도 같다. 반면에 초(楚)나라 굴원(屈原)의 글과 굴원을 추모하는 글을 엮은 게 『초사』(楚辭)다. 『초사』가 중요한 건, 『시경』이 갖추지 못한 낭만적 사상과 문체가 보여서다. 이 두 경전은, 중국 문학 사조의 두 갈래 흐름을 맨 앞자리에서 대표한다.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