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어느 정도 면담실에서 진행이 되자 채영은 자기가 구상한 시나리오에 대해 정민수에게 조언을 구했다.정민수는 채영의 시나리오에 흥미를 느끼고 이것저것 전문적인 조언을 해 주었다.채영은 고마움의 뜻으로 술을 한 잔 사겠다고 했다.그래서 둘은 병원에서 다소 떨어진 춘천집으로 가 닭찜을 안주로 동동주를 마시게 되었다.정민수는 금세 술이 거나하게 올랐고 채영은 채영 나름대로 잘하면 오늘이면 그를 자기의 수용소 안에 가둘 수 있겠다는예감이 들었다.그들은 서로 너나할것 없이 부지런히 상대에게 술을 권했다.들어갈 때는 잘 들어가지만 일단 들어가고나면 휭하니도는 게 동동주의 특징이다.둘은 주인집 아주머니가 생각보단 더취하니 그만 마시라고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한 병 더 시켜 순식간에 비워버렸다.그 리고 가까운 카페로 가 맥주로 2차를 하게 되었다.정민수는 술이 오르자 곧 호시탐탐 채영의 옆으로 앉을 궁리만 했고 채영은 모른 척 그를 옆으로 인도했다.정민수는채영의 옆에 앉자마자 채영의 입술을 탐했고 그의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 했다.채영은 순진한 척 그의 손길을 내버려두었다.그리고 곧 정민수는 술한잔 더하자고 채영을 가까운 여관으로 데리고갔다.채영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성급하게 옷을 벗기고 들어오는 그를 못이기는 척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두고두고 잘 이용해 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그런데 그때 갑자기 채영에게서 이상한 생각이 스쳐갔다.그를 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만일 그를 여기서 죽여버린다면….아무도 자기가 범인인 줄은 모르리라.그야말로 범행 동기가 없는 무작위 살인이니까 .그러나 채영은부질없는 상상이려니 하고 정민수를 부둥켜안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내가 지금 당신을 죽여버리면 어떡할래요?』 그런데 정민수는 갑자기 얼어붙은 듯 꼼짝을 안하는 것이었다.채영은 혹시 이남자가 겁을 집어먹고 도망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에 「아이! 농담도 몰라요」하면서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으나 그의 침묵과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채영은 다시 더 애교를 떨어보았으나 그의 굳어진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채영은 될대로 되라는 마음에그의 목을 깨물면서 「내가 흡혈귀인 것 몰랐죠?」하고 다시 장난을 걸었으나 그는 여전히 꿈쩍도 안했다.채영은 은근히 심통이나 그냥 확 피나 게 물어버릴까 하는데 정민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부탁이 있는데 하나 들어주겠소?』 『네,뭔데요.』 채영이 생글거리면서 올려다 보자 정민수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말한 것같이 해주겠소?』 『네? 뭐라구요?』 채영이 깜짝놀라자 정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