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을 바라보는 이중 시선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

요즘 드라마로만 본다면 이른바 ‘싱글맘’은 새 시대의 캔디 혹은 신데렐라의 매력적인 조건 중 하나가 된 듯하다. ‘고맙습니다’의 공효진이나 ‘불한당’의 이다해도 그렇고 최근 시작한 MBC 드라마 ‘천하일색 박정금’의 배종옥까지, 가진 것 없고 별 볼일 없는 여자들이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스토리가 죽 이어지는 걸 보면 말이다.

‘애 딸린 이혼녀 (혹은 과부)’ 같은 칙칙한 호칭에서 그나마 근사해 보이는 영어 싱글맘으로 바뀌는 몇 년 동안 아무래도 이들에 대한 현실의 시각이 넓어졌음을 반영하는 것일게다. 예쁜 처녀 배우들한테 그 역할을 맡긴 것만 봐도 드라마 속에서 이들에 대한 대우가 나아졌음을 알겠다. 게다가 그들은 똑똑하고 이해심 많은 자식에, 주변에 그들을 노리는 번듯한 꽃미남 총각까지 두고 있다. 드라마 속에서만큼은 싱글맘의 형편은 확 풀려 보인다.

그렇지만 그 싱글맘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을 때, 더구나 그것이 ‘이혼’이나 ‘사별’ 같은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었을 때 사람들이 보여 주는 반응을 보면 역시 드라마 속의 풍경은 아직 현실과는 아득히 먼 판타지에 불과했음을 실감하게 한다. ‘인간극장’에 등장한 허수경씨의 이야기를 두고 벌어지는 반응을 보면 더 그렇다.

처녀가 애를 배 낳아 기르는 그런 일은 엄청나게 돈 많고 무지무지 똑똑하고 꿀릴 것 하나 없는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 같은 여자만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동안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고 난 뒤 그런 결정을 내린 허수경씨의 소식을 접하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태어나 한 일 중에 가장 감동적이고 교훈적이고 짜릿한 일로 애 낳은 경험을 꼽으면서 만나는 처녀들마다 어찌 됐던 애는 낳아 봐야 한다고 읊고 다녔던 나로서는 그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아이를 낳고 싶은 허씨한테 가서 “잘했다”며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는 환경을 만든 무책임한 엄마로 허씨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아빠의 부재라는 것이 인생에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결핍 중 하나며, 그 결핍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성숙한 대답을 스스로 지닌 여자가 꾸려갈 가정에다 대고 굳이 ‘결손’이니 ‘비정상’의 굴레를 씌우려고 하는 사람들의 비열한 눈길이 싫다.

그들은 홀어머니 밑에서 훌륭하게 성장해 가문과 나라의 이름을 빛낸 수많은 사람의 성취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걸까.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수많은 엄마·아빠 없는 사람들은 다 불행하고 비정상적인 걸까. 사실 아버지든 어머니든 어느 쪽이라도 있다가 없어져야 ‘결핍’인 것이지, 처음부터 그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결핍이란 말은 어울리지도 않는다.

한 여성의 간절하고 당당한 모성의 선택을 무책임한 욕심으로 비난하고 그 아이의 운명적인 결핍을 가여워하는 척하며 그들을 비정상적인 가정으로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오히려 참 결핍되어 보인다. 글 이윤정

--------------------------------------------------------------------------------
이윤정씨는 영화 제작자로 활약한 문화통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