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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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2부 불타는 땅 꽃잎은 떠 물 위에 흐르고(25) 흘끗 태수는 뒤를 돌아보았다.무슨 놈의 잠꼬대를 저렇게 한담.스무명 쯤만 덮치면 배 하나 끌고 나가기는 어렵지 않으리라.그러나 문제는 누가 그 일을 맡느냐다.입술을 물었다 놓으면서 태수는 한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지금 정하지 않아서는 시간이 없다.
말을 꺼내기를 미루며 태수가 실없이 중얼거렸다.
『이 사람 밤새도록 먹네.』 『코고는 것도 병이라니까.그런데저 친구는 밤새 뭘 먹는구만.여편네 찾아가면서.』 한씨가 느릿느릿 말했다.
『코야 골아도 좋다만 그런 마누라라도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 『지금 그런 얘기 할 때가 아니고.』 다시 정색을 하면서 태수가 한씨를 바라보았다.
『잡혀갈 땐… 나 혼자 가겠소.』 『무슨 소리.』 동호가 눈을 껌벅였다.
『아니오.그게 옳소.』 말이 없던 한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누가 가든 결국은 다 잡혀 갈 거요.그러나 제일 처음에 누가 나서느냐는 것은 정해 두는 게 좋을 듯 싶소.』 『그건 니까?』 『뒷일을 누가 맡느냐요.이러다가 그냥 끝날 거면 안하느니만 못하고….치는 거야 동에서 서에서 치겠지만 그 사이에 몇 명이나 빼돌릴 수 있느냐가 문제 아니오.』 태수가 어금니를 문다.이 영감이 어떻게 그걸 다 눈치챘는가.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친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태수가 앞서 나갔다.
『그건 영감님이 맡으시지요.』 『자네 지금 날 보고 영감이라고 했지 않나.그건 영감이 할 일이 아니네.나야 시간을 버는데나 쓰일까.』 『말 돌리고 할 새 없다.』 키 큰 동호가 긴 다리를 꼬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문제는 그거 아니겠소.누가 저들을 데리고 나가느냐요.중구난방 싸돌아 다니다가는 다 잡힌다 그말이오.결국 우리가 여기서 차치고 포치는 건 나가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겠소.그렇다면 그쪽에 대한 방비가 제일이지.누가 뛰든 믿을만한 사람 이 앞을 서줘야 되는 게 아닌가 그말이오.』 『알았습니다.그런 뜻에서도 영감님이 적격이 아닌가 싶은데요.』 『난 힘이 달리네.』 동호가 옆에 놓은 몽둥이를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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