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우리가 보낸 쌀 먹고 총 겨누는 북한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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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06년 말부터 북한군 전방부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쌀 마대가 트럭에서 하역되는 장면이 우리 군에 포착됐다고 한다. 또 일부 마대는 북한군 진지 구축에도 활용됐다. 그동안 의혹에 머물던, 남한이 제공한 쌀의 북한군 전용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남한의 대북 식량지원의 배경은 자명하다. 피를 같이 나눈 북녘 동포들을 굶주림의 고통에 머물게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남북한 남자의 평균 신장의 차이가 15㎝나 되는 참담한 현상을 더 이상 방관하다간 ‘민족적 재앙’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감안됐을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에도 결코 지원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은 이런 측면이 작용했던 것이다.

남한은 1995년부터 지금까지 1조원이 넘는 액수의 식량을 북한에 제공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고통은 좀처럼 완화되고 있지 않다. 지난해 세계식량계획은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이 기아와 영양부족에 직면해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에 드러난 ‘군량미 전용’은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제부터는 기존 지원방식에 일대 변화가 있어야 한다. 남한의 지원 대상은 어디까지나 가장 고초를 겪고 있는 일반 주민, 특히 어린이·학생이지 군부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분배의 투명성 확보’에 보다 역점을 두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형식적인 모니터링에 그쳤다. 북한 당국자의 안내를 받아 미리 정한 식량보급소 몇 군데를 둘러보는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북한군 전용의 명백한 증거를 잡고도 북한에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았다. 이러니 북한이 보라는 듯이 전용한 것 아닌가.

식량 지원은 전적으로 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것이다. 이를 훼손하는 북한의 처사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새 정부는 이런 측면을 북한에 확실하게 주지시켜야 한다. 투명성 정도와 지원 규모를 연계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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