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공천 신청으로 본 ‘새 트렌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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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의원끼리의 경쟁, 힘센 실력자에게 도전하는 명망가 정치 신인….

4·9 총선을 준비하는 한나라당에서 과거 좀처럼 보기 어렵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1173명이나 공천 신청을 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쟁에 익숙해진 세태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나 노무현 대통령처럼 대중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힘들더라도 제대로 승부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란 지적도 있다.

◇중진 대 신인=김덕룡 의원은 5선의 중진이다. 서울 서초을에서만 내리 당선됐다. 이명박 당선인과는 1964년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시위를 함께 주도했던 40년 지기다. 이 당선인의 최고의사결정기구였던 ‘6인 회의’ 멤버이기도 했다. 이런 거물에게 초짜인 고승덕 변호사가 도전했다. ‘고시 3관왕’으로 이름났지만 대선 때 당 클린정치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신인이다. 고 변호사는 “김 의원은 민주투사로 싸웠고 정권교체에 충분한 역할을 한 분이지만 새로운 시대에 국민은 새로운 인물을 바란다”고 주장했다.

4선의 이규택 의원은 여주-이천의 강자다. 내로라하는 검사였던 이범관 전 광주고검장이 이 의원에게 도전장을 냈다. 대구의 3선 중진인 박종근 의원도 이철우 전 경북도 부지사와 맞서 싸워야 한다.

과거에도 중진에게 도전하는 정치 신인이 있었다. 대부분 무명에 가까웠다. 이번엔 지명도 있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중진을 꺾으면 단번에 전국적 인물로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아들 대 양아들=정치권은 인연을 중시하는 곳이다. ‘누구의 사람’이란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닐 정도다. 하지만 ‘인연 따로 경쟁 따로’ 공천 신청도 벌어지고 있다.

고 김진재 의원은 부산 정계의 대표적 정치인이다. 그의 지역구였던 금정에 아들인 김세연 동일고무벨트 대표와, 김 의원의 보좌관 생활을 오래해 정치권에서 ‘양아들’로 불렸던 김영관 동의대 초빙교수가 함께 신청서를 냈다. 아들과 양아들이 현역 의원(박승환)과 삼각경쟁을 하는 양상이다.

4선에 도전하는 권철현 의원은 자신의 보좌관을 지낸 정광윤 부대변인을 경쟁자로 맞았다. 역시 4선에 도전하는 김무성 의원은 당 비서실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정태윤씨의 도전을 받게 됐다.

◇열세지역 마다 않는 후보들=충청, 특히 충남은 한나라당으로선 가장 골치 아픈 지역이다. 호남 다음으로 당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활약 여부에 따라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서울에서 출생했지만 원적지인 충남 당진에 비공개로 공천 신청을 했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과 정준석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은 천안을에서, 이훈규 전 인천지검장은 아산에서 뛰고 있다. 서울 송파병에선 현역 여성 의원끼리 경쟁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비례대표인 이계경 의원과 나경원 대변인이 그들이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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