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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금연 점수 10점 만점에 6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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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강력한 금연 규칙을 새로 만들어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에 가입된 179개 회원국들이 의무적으로 지키도록 권고하는 ‘최소 기준’이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세계금연행동’(Tobacco Free Initiative) 대표 마가릿 챈 박사는 지난 7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흡연실태 보고서’(WHO Report on the Global Tobacco Epidemic, 2008)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 작성을 위해 블룸버그 재단이 후원했다.

MPOWER라고 명명된 이 규칙은 모두 6개의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각국 정부가 적극 나서서 담배 관련 통계를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확보해 공개하고, 담배갑에 그림을 동원한 경고 문구를 넣고, 간접 흡연의 피해를 막고, 담배회사의 광고와 판촉 행위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MPOWER란 각 조항의 첫 글자를 딴 것. 6가지 조항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면 ‘금연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M: Monitor tobacco use and prevention policies
P: Protect people from tobacco smoke
O: Offer help to quit tobacco use
W: Warn about the dangers of tobacco
E: Enforce bans on tobacco advertising, promotion and sponsorship
R: Raise taxes on tobacco

M: Monitor tobacco use and prevention policies(흡연 실태와 금연 정책을 모니터하라). 개발 도상국의 3분의 2는 흡연 인구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파악하고 있지 않다. 담배로 인한 질병과 사망에 대한 통계자료도 전무한 실정이다.

P: Protect people from tobacco smoke(담배 연기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라). 모든 사람은 맑은 공기를 호흡할 권리가 있다. 공공 장소에서 담배 연기를 추방해야 한다. 하지만 포괄적인 금연 법규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은 세계 인구의 5%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금연 법규는 일부 실내공간에만 적용되고 그것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공공 장소와 작업장에서 흡연을 완전히 금지시켜야만 간접 흡연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고 흡연자들도 금연에 성공할 수 있다.

O: Offer help to quit tobacco use(금연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 세계 성인 인구의 4분에 1에 해당하는 10억명의 흡연 인구 가운데 대부분이 니코틴 중독이다. 많은 사람들은 담배를 끊고 싶어하지만 금연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길이 없다. 일반인들이 쉽고 값싸게 참가할 수 있는 금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국가는 9개국에 불과하다.

W: Warn about the dangers of tobacco(흡연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라).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완전히 숙지하고 있는 흡연자는 그리 많지 않다. 담배의 위험성에 대한 폭넓은 경고를 함으로써 특히 청소년들이 갖고 있는 담배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 담배갑에 도표를 곁들여 담배의 위험성을 경고해야 하고(현재 이렇게 하는 나라는 세계 인구의 6%에 해당하는 15개국뿐이다), 담배갑 앞뒤 면의 30%에 그림을 곁들여 경고문을 넣어야 한다(지금은 세계 인구의 4%에 해당하는 5개국에서만 실시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40% 이상이 담배 이름에‘라이트’‘저타르’등 애매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수식어를 붙여 마치 건강에 해롭지 않은 것처럼 속이는 국가에서 살고 있다.

E: Enforce bans on tobacco advertising, promotion and sponsorship (담배회사의 광고, 판촉, 후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라). 담배 회사는 전세계적으로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을 담배 광고, 판촉과 행사 후원에 사용한다. 담배 광고와 판촉에 대한 부분적인 금지로는 금연에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왜냐하면 담배회사들은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다른 경로를 통해 마케팅을 하기 때문이다. 담배 광고, 판촉, 후원을 전적으로 금지시켜야만 담배 소비를 줄이고 특히 청소년들이 담배회사의 마케팅 전략에 희생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세계 인구의 5%만 담배회사의 광고, 판촉, 행사후원이 전적으로 금지된 국가에서 살고 있다. 세계 어린이의 절반 가량이 청소년에게 담배 판매를 금지 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다.

R: Raise taxes on tobacco (담배세를 인상하라). 담배세를 인상해 담배값을 올리는 것은 특히 청소년의 담배 사용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담배값의 75% 이상을 세금으로 매기는 나라는 세계인구의 2%에 해당하는 4개국뿐이다. 1인당 국민 소득 5위권 국가 중 4개국이 담배값의 51∼75%을 세금으로 매기긴다. 국민 소득 중하위권 국가 중 51∼75%의 세율을 적용하는 나라는 전체의 4분의 1 미만에 그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담배값을 70% 인상하면 흡연으로 인한 사망률을 4분의 3으로 줄일 수 있다. 담배값을 10% 인상하면 담배 소비량이 고소득 국가에서는 4%, 중하위권 국가에서는 8%나 줄어든다. 이와 더불어 담배 소비는 줄어들지만 담배로 인한 세금 수입은 늘어난다.

세계 흡연 실태를 파헤친 이 보고서는 매년 540만명이 흡연으로 사망한다고 밝혔다. 2030년이 되면 흡연으로 인한 사망 인구는 매년 8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가운데 80%가 개발도상국 출신이다. 또 21세기 전체를 통틀어 총 10억명의 인구가 흡연으로 사망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 보고서는 전세계 인구의 5%만이 흡연율을 낮추려는 획기적인 금연 노력을 기울이는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전세계 국가들이 금연 정책 시행에 투자하는 예산은 담배로 걷어들이는 세금의 500분의 1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국가의 40%가 아직도 초중고교나 병원에서 흡연을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WHO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청소년 흡연율은 10.2%(남성 10.9%, 여성 8.8%)이며 성인 흡연율은 29.1%(남성 52.8%, 여성 5.8%)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성인 흡연자 중 여성의 비율이 10% 내외인데 반해 청소년 흡연자 중 여성의 비율이 50%에 육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WHO가 파악한 한국의 담배 세율은 52%. 선진국형인 75%에 비해 아직도 담배값(세금)이 싸다는 얘기다. 담배회사의 광고와 판촉, 행사 후원은 TV와 라디오, 간판, 옥외광고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신문ㆍ잡지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 담배를 판매하는 편의점 등에는 담배회사의 대형 광고가 나부낀다. 담배 이름을 딴 상품 개발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TV나 영화에 담배 제품이 간접 광고 형식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담배 회사가 후원하는 콘서트도 가능하다.

WHO 보고서는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병원, 초중고교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지만, 대학교나 정부기관, 사무실, 식당, 술집에서는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라이트’‘저타르’등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용어를 담배 포장지에 넣지 못하도록 하는 법규도 없으며, 그림을 곁들인 경고문도 없다고 밝혔다. WHO가 파악한 한국의 금연 정책 예산은 315억원. 이 보고서는 또 한국을 금연이 제대로 지켜지는 실태를 기준으로 점수를 매길 때 10 만점에 6점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웃 일본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유럽의 선진국 수준에는 아직 못 미치고 있다.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세계 국가의 80%가 MPOWER 중 하나도 제대로 실천하고 있지 않다. 금연 법규가 때로는 인권 침해 소지가 있긴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장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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