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모세像의 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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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켈란젤로가 만든 모세상에는 그 발등에 기다란 흠집이 있다고한다.그것은 한 조각가의 절망의 흔적이다.
그는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조각의 발등을끌로 긁으며 울부짖었다.「너는 왜 말을 하지 않느냐.」차가운 돌에 조차 생명을 불어 넣으려 했던 그의 예술적 이상은 지극하기 이를 데 없다.
작품의 우수성은 물론이지만 그것을 위해 쏟은 영혼의 열정과 혼신의 노력이 모세상을 영원한 걸작으로 남게 했을 것이다.만일진품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흡사한 복제품을 만들었다 해도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것이 있다.발등에 난 흠 집,거기에 담겨 있는 절망과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복제될 수 없는 것이다.
현대의 복제기술은 놀랄 만한 수준을 갖게 되었다.그 정밀성은단순한 기술을 넘어서서 거의 예술이라고 할 만하다.인쇄술의 발달과 음(音)과 사진의 복제기술은 문화의 발전을 가속화시켰고 정보의 민주화를 가져다 주었다.그러나 무엇이든지 복제할 수 있다는 신념은 우리의 의식마저도 지배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작가의 개성과 고유성이 요구되는 예술에서도 그 복제의 심리가정당화 되어가는 추세다.절망이라는 긴 강을 건너지 않고 쏟아져나오는 예술작품들은 하나의 유행처럼 피어 났다가 재빨리 시들어버린다. 문제는 고유성의 상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도덕성의 차원에서는 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얼마전 복사기로 만들어낸 위조수표가 유통되는 바람에 떠들썩했던 일이 있다.
또 종량제 실시에 따라 사용되는 쓰레기봉투조차 위조비상이 걸리는 판이니,세상에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 것인가.위조품에는 땀의 냄새가 없고 절망의 흔적이 없다.
그러한 매끈한 위조품이 진품행세를 하는 마당에 진품을 만들려는 노력은 갈수록 설 땅이 좁아져가고 있다.위대한 영혼이 남긴흠집 하나가 나의 의식에 깊이 각인되는 것도 진품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 때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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