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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이 다가온 ‘미국판 카드 대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8호 04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2막이 오르기 시작했다.”

美 신용카드 연체율 7.6%…16년 만에 최고치

세계적인 경제 분석가인 노리엘 루비니 뉴욕대(경제학) 교수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인 글로벌 이코노모니터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신용카드와 자동차 할부금 등 소비금융 위기를 지적한 말이다. 한마디로 ‘미국판 카드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다. 급기야 지난주 말 뉴욕 증시는 이런 우려감을 반영해 64포인트(0.5%) 정도 미끄러졌다. 씨티그룹과 JP모건, 메릴린치 등 금융주들이 크게 하락했다.

물론 당장 카드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은 현재 카드 연체율과 신용경색, 일자리 감소, 금융회사들의 카드한도 축소 등에 비춰 서브프라임에 이어 카드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어느 정도 심각하기에 시장이 긴장한 것일까.

지난해 말 현재 미국인들이 짊어지고 있는 일시불 사용을 제외한 신용카드 빚(할부+리볼빙 대금)은 9500억 달러(약 890조원) 정도다. 이 가운데 10% 정도인 940억 달러 가 연체된 상태다. 또 금융회사들이 부실로 분류하는 두 달 이상 연체된 금액만도 717억 달러(7.6%)를 넘어섰다. 1991년 이후 가장 높은 연체율이다.

카드 연체율은 미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2006년 9월 두 달 이상 연체 비율이 6%대에 진입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신용경색이 본격화한 지난해 8~9월에는 7%대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연체율이 5%를 넘으면 위험 수위로 본다.

버블 시기 미국인들은 신용카드로 씀씀이를 키운 뒤 집값 상승분을 담보로 대출받아 갚는 방식으로 생활해 왔다. 그런데 집값이 하락하면서 추가 대출이 불가능해지자 연체의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다 서브프라임에 따른 신용경색과 기름값 상승 등이 더해져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는 카드사태가 서브프라임만큼이나 금융과 실물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JP모건 등 월스트리트 메이저 금융회사들은 카드채의 3분의 1 정도인 2000억 달러를 서브프라임과 같은 방식으로 유동화해 세계 곳곳의 금융회사와 헤지펀드 등에 팔아넘겼다. 주택대출 연체처럼 신용카드 연체도 글로벌 금융회사의 손실을 키우고 신용경색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자동차할부금 부실화 등 소비자금융 전체로 사태가 확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카드 연체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한 분기 정도 뒤따라 각종 할부금 연체도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카드연체로 미국인의 씀씀이가 줄어들면 기업의 매출과 순이익도 급감해 결국 비우량 기업들이 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게 된다. 돈줄이 마르면 사모펀드가 2003~2006년에 마구 발행한 바이아웃(Buy-out) 채권과 미국 지방정부 채권이 부실화되는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

미국 금융위험분석회사인 리스크메트릭스는 “결국 서브프라임이 이번 사태의 뇌관이었다면 신용카드 부실화는 증폭기와 같다”며 “시장이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 다시 밀려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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