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의 view] 명절 고통에서 아내 구출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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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해마다 딱 두 번 오는 명절의 공포. 아마도 지난번 추석 때 아내와 말다툼을 심하게 했던 기억이 있는 남편은 명절이 오기도 전에 긴장 상태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가정법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명절 전후로 이혼하는 현상인 이른바 ‘명절 이혼’이 늘고 있다고 한다.

시댁과의 갈등, 동서 간의 불화, 처가와 시댁의 차별 등 이혼 사유는 참으로 많다. 대체로 남자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을 아내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로 여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명절 문화는 남자에게 ‘이대로가 좋아’고, 여자에게는 ‘이제는 바꿔보자’는 정반대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댁에 가면 아내는 엄청난 문화충격에 휩싸인다. 집에선 그렇게도 일을 잘 도와주던 남편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는다.

시어머니 눈치 보느라 남편에게 도와달라는 말도 못하고, 하루 24시간 부엌 노동자로 전락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게다가 집에서는 의사결정을 하는 데 동등한 입장이었던 부부가 시댁에만 가면 거스를 수 없는 ‘상하관계’가 성립된다. 아직도 남자들 밥상, 여자들 밥상을 따로 차리고 반찬도 차별하는 집안이 있다.

그래도 40대 이상 아내들은 하도 겪어서 포기하고 ‘나 죽었네’ 하고 견딘다. 그러나 요즘 20, 30대 젊은 부부에게는 씨도 안 먹히는 소리다. 한 맞벌이 20대 아내는 첫 명절날 시댁에 가서 ‘여자들은 빨리빨리 먹고 일하고, 남자들은 잠이나 푹 자라’는 시어머니 말에 기가 막혀 혼자 부침개를 뒤집으며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구세대니 그러려니 하는데 모른 척하는 남편은 정말 죽도록 미웠다고 한다.

남편들은 알아야 한다. 여성이 두려운 것은 명절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이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지는 것을 모른 체하는 남편의 무관심이다. 아내가 힘들어 하거나 어머니로부터 잘못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되면 즉시 구출해야 한다.

잠시 불러내 동네 호젓한 찻집에 가서 30분 정도만이라도 ‘미안하다. 내가 집에 가서 주물러 줄게. 당신 사랑해…’ 등등 마음을 풀어주어야 한다. 아마도 아내는 돌아가자마자 ‘어머니 전 어디 있어요? 제가 다 할게요’로 화답할 것이다.

명절에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 힘든 일을 하고 어깨가 빠질 것 같아 잠시 혼자 주무르고 있는 아내에게 가서 “뭐 해? 어머니 혼자 다 하시잖아”라며 완장 찬 남편 역할을 자청하는 것은 완전 자살골이다.

둘째, 제발 ‘수고하네’란 말은 피해야 한다. 우직하게 일하는 소의 역할을 다해야만 명절에 ‘착한 며느리’ 소리 듣는 구조도 서럽거늘 게다가 남편까지 “수고하네”란 말을 거듭하면 참으로 모든 것이 수고롭게만 느껴진다.

명절에 아내에게 가장 많이 해야 할 말은 ‘수고하네’가 아니고 ‘사랑해’다. 힘들게 전을 부치고 있는 아내에게 살짝 다가가서 “사랑해 여보… 역시 당신이 해준 게 제일 맛있어. 힘든 거 있으면 무조건 나 불러!” 이 얼마나 아내의 명절을 업되게 해주는 말인가.

이번 명절은 대한민국의 모든 부부가 무사히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성숙한 관계를 확인하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W인사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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