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없다” 중국 원로들 컴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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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노병은 죽지 않았다.”

중국 정치를 두고 흔히 하는 말이다. 은퇴 원로들이 일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요즘 중국 정가에선 이 말이 “노병이 돌아왔다”는 말로 바뀌고 있다. 원로들이 상당한 실권을 갖고 있어서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5일 중국 공산당이 국가 주요 인사와 정책 결정에 대해 퇴임 원로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것을 제도화했다고 전했다. 명백한 규정은 없지만 중국 정치 지도자들은 68세를 넘으면 퇴임하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이런 제도를 만든 것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의 권력이 아직 공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제도는 다음달 열릴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국회격)에서 퇴임하는 쩡칭훙(曾慶紅) 국가 부주석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그는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17전대) 직전 국가 주요 현안에 대해 원로들의 지혜를 구하고 이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해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동의를 받아냈다.

이는 곧바로 향후 5년간 중국을 이끌 제17기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구성에 반영됐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리펑(李鵬)·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등 퇴임 지도자 9명이 전체 회의에 참석해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 개진했다. 그리고 후 주석의 지지를 받은 리커창(李克强) 랴오닝(遼寧)성 당서기 대신 혁명 원로 시중쉰(習仲勳)의 아들인 시진핑(習近平) 상하이(上海)시 서기를 차기 후계자로 부상시켰다. 당시 리 서기와 시 서기는 모두 상무위 위원에 올랐지만, 당 서열은 시 서기가 6위로 리 서기(7위)보다 앞섰다. 큰 변수가 없는 한 2012년 시 서기가 후 주석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치 평론가들은 과거 덩샤오핑(鄧小平)이 4세대 지도자로 후진타오를 발탁해 장쩌민 전 주석의 뒤를 잇게 했던 전례와 비교된다며 앞으로 중국 최고지도자는 원로와 현직 지도자들의 합의에 의해 선발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당헌 개정에도 원로들의 의견이 반영됐다. 후 주석은 자신의 통치 철학인 과학적 발전관과 조화(和諧)사회론을 당헌에 반영할 계획이었으나 원로들의 반대로 조화사회론은 반영되지 못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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