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블룸버그, 민주·공화 승패 가를 변수되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7호 14면

2008년 미 대선의 ‘와일드 카드’는 누구일까. 마이클 블룸버그(65) 뉴욕시장이 우선 꼽힌다. 민주당원으로 출발한 그는 2001년 공화당 당적으로 뉴욕시장에 선출된 뒤 지난해 6월 돌연 탈당했다. 현재 그는 출마 여부를 흐리면서도 ‘미국의 미래건설’이란 초당파 모임을 결성했고, 워싱턴 정가에 대해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무소속후보

그가 제3당이나 무소속 후보로 대권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블룸버그는 미 대선전의 최대 무기인 돈을 가졌다. 블룸버그 통신 창업자인 그는 미 34위의 재력가다. 인지도도 높다. 언론들은 “블룸버그가 5억 달러를 쓸 예정”이며 “중도를 표방해 공화·민주 양당체제에 염증이 난 유권자들을 파고들 것”이라고 분석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블룸버그는 1992년 약한 후보(조지 H 부시)의 표를 뺏어 상대 후보(빌 클린턴)가 쉽게 당선되게 한 로스 페로의 신화를 답습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가 실제로 나설지, 출마하면 어느 정도의 위력을 지닐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분명한 것은 양당체제가 굳어진 이래 무소속 또는 제3당 후보가 대권을 거머쥔 예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판세를 좌우한 적은 적지 않았다.

제3당 후보가 존재감을 드러낸 첫 선거는 1832년 대선이다. 반(反)메이슨(Anti-Masons)당의 윌리엄 워트 후보가 7명의 선거인단(득표율 8%)을 얻어 민주·공화 양당을 압박했다. 1848년에는 전직 대통령 마틴 밴 뷰런이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자유토지당’ 후보로 출마해 10.1%를 얻었다. 민주당 출신인 뷰런의 출마로 휘그당(훗날 공화당)의 재커리 테일러는 낙승했다.

제3당 후보가 민주·공화 후보보다 더 많은 표를 받은 적도 있다.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전에서 탈락한 그는 탈당해 진보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 후보가 435명의 선거인단을 차지했고, 루스벨트는 88명의 선거인단(득표율 27.5%)을 얻었다. 공화당의 윌리엄 태프트는 8명의 선거인단을 얻는 데 그쳤다.

68년 미국 독립당 후보로 출마한 조지 월리스는 46명의 선거인단(득표율 13.5%)을 획득했다. 남부 주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를 지지함으로써 민주당의 휴버트 험프리 후보는 191명에 그쳤고, 닉슨은 301명으로 압승했다. 이후 제3당 또는 무소속 후보가 선거인단을 얻은 적은 없었다.

80년 존 앤더슨 하원의원이 로널드 레이건과의 공화당 후보 지명전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해 6%의 지지를 받았지만 선거인단 획득은 제로였다. 하지만 승패의 결정적 변수가 되곤 했다. 92년 조지 H 부시(공화)와 아칸소 주지사 클린턴(민주)의 대결구도에 끼어든 억만장자 로스 페로(무소속)는 부시 행정부의 재정 적자를 공격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해 6월에는 지지율이 39%까지 치솟았다.

대선에서는 19%를 득표했다. 선거인단은 하나도 얻어내지 못했지만 부시의 지지층을 흡수해 12년 공화당 통치를 마감시키는 데 일조했다. 페로는 96년 대선 때는 개혁당을 창당해 8.5%를 얻었다.

미 역사상 최대 접전으로 꼽히는 2000년 조지 W 부시(공화)와 앨 고어(민주)의 대결에서는 녹색당의 랠프 네이더가 그 역할을 했다. 네이더가 박빙 승부의 플로리다주 후보자 명단에 없었다면 고어가 신승했을지 모른다. 네이더는 당시 288만2955표(2.7%)를 얻었다. 공화·민주 양당에 제3당 후보는 수호천사와 훼방꾼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