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敗者 된 ‘로스쿨 싸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7호 06면

로스쿨 예비인가대학 선정에서 탈락하거나 배정 인원이 기대에 못 미친 대학들의 항의시위가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강단에서 법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거리에 나선 모습이 “법보다 정치가 우위”라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명언(?)과 오버랩된다. 청와대와 교육부가 “경남 지역에도 로스쿨을 배정하라” "추가 선정은 없다”고 맞서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혹스러움을 넘어 안쓰러움까지 느끼게 한다.

돌이켜 보면 이번 로스쿨 파동은 예고돼온 것이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지난해 7월. 법안을 제출한 지 1년10개월 만이었다. 한나라당의 ‘사학법 연계’ 전략에 묶여 있다가 회기 마지막 날 국회의장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돼 가까스로 무산될 위기를 넘겼다. 로스쿨 도입에 부정적이던 법사위를 우회한 것이 다행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겠으나, 적정 법조인 수 등을 공론화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지난해 10월 교육부가 2009년도 로스쿨 총정원을 1500명으로 정하면서 다시 홍역을 앓았다. ‘3200명 이상’을 요구하던 대학은 물론 시민단체·학계가 “법조인들의 기득권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라며 일제히 반발했다. 교육부는 “정원 재조정은 없다”며 강행 방침을 밝혔으나 결국 총 정원을 ‘2000명’으로 절충했다.

그러다 지난주 로스쿨 대학 선정을 놓고 또다시 갈등이 재연된 것이다. 청와대가 이기든, 교육부가 이기든 정부 내부의 이견은 해소되겠지만, 대학가의 반발이 수그러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이러다간 매년 로스쿨 총정원을 정할 때마다, 로스쿨 인가 재심사를 할 때마다 교수들이 시위를 하고 정치논리가 또 다른 정치논리를 부르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로스쿨 못 받으면 대학 브랜드가 추락한다”며 앞뒤 가리지 않고 과잉 투자에 나선 대학들. 이런 분위기에 제동을 걸지 못한 채 집단행동에 뒷걸음질쳐 온 정부.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가 물고 물린 셈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패자가 돼버린 싸움 속에 우리 사회는 서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