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휴먼 신도시’ 건설 중 ③ 네덜란드 알메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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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성당이나 궁전이 없다면 눈길 끄는 도시 아이콘을 새로 만들면 된다.”

이달 초 네덜란드 알메러시 문화센터에서 만난 안네마리 요리츠마 레빙크 알메러 시장의 말이다.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번듯한 유적지 하나 없어도 얼마든지 도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알메러가 베드타운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채택한 발전 전략이기도 하다.

전체 면적 1만792ha로 우리나라 분당의 약 9배 크기인 알메러는 네덜란드가 30년 전 바다를 매립해 건설하기 시작한 신도시다. 단계별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이곳에는 현재 알메러 하븐, 알메러 슈다트, 알메러 바우텐이 개발됐으며 알메러 팜프스와 알메러 후트 등이 건설 중이다.

30살짜리 알메러가 수백 년 연륜을 자랑하는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뭔가 다른 매력 포인트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 대표적 프로젝트가 12억 유로를 투자한 ‘시티 센터’ 건설이다. 알메러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작은 도시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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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면적 13만㎡(약 4만 평)의 공간을 ‘창조’하는 마스터 플랜은 1999년 국제현상 공모로 선정됐다. 당선된 곳은 네덜란드의 건축사무소 OMA.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가 이끄는 그 OMA다. 쿨하스는 리움박물관, 서울대박물관을 설계해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시티 센터는 생활공간으로서의 실용성과 감성적 예술성을 동시에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메러를 대표하는 도시 아이콘이 된 이유다. 쿨하스와 함께 설계를 맡은 플로리스 알케마데(OMA 파트너) 소장은 “경사지가 없는 네덜란드에서 인공적인 경사지를 조성해 변화 있는 경관을 만드는 동시에 시티 센터 자체가 또 하나의 도시가 되도록 한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6~8m 높이의 데크를 만들고 그 인공대지 위에 영화관·뮤직홀·박물관·호텔·레스토랑·아파트 등 복합용도의 건물들을 지었다. 주거공간인 아파트는 상점이나 음식점 위층에 들어가도록 설계됐다. 상점과 위층의 주택, 극장 등의 문화시설이 소규모 광장들 주위에 모이도록 배치한 것은 오래된 유럽 도시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것이란 설명이다.

알케마데 소장은 “건축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시티 센터의 어느 면이나 전면(front facade)으로 보이도록 한 점”이라고 말했다. 도시 어느 쪽에서 접근하더라도 모두 시티 센터의 얼굴을 보는 느낌이 들도록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시티 센터에 짓는 개별 건물도 대부분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따로 설계를 맡았다. 유명 건축가들의 이름을 통해 세계의 이목을 끌겠다는 생각이다. 시티 센터와 인근 호수의 경계에 있는 호반의 문화센터는 일본 여성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가 맡았다. 팝 뮤직홀과 호텔은 영국 건축가 윌 알솝, 주상복합 건물은 프랑스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잠팍과 영국의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맡는 등 전 세계의 건축가들을 불러모았다. 세계적인 건축 전시장이 된 것이다. 자칫 일관성을 잃기 쉬운 계획이지만 OMA의 세심한 조정으로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알메러가 도시 아이콘 건설에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간단찮은 곡절이 있었다. 시청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얀 드 하르토크는 “알메러 개발은 여러 차례 부침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 부침이란 암스테르담과의 관계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네덜란드 정부는 70년 대엔 알메러를 베드타운으로 개발하면서 지원을 해주다가 80년 대 후반 들어 암스테르담 도심이 침체되자 알메러의 개발을 되레 억제했다. 그 뒤 90년대 후반 암스테르담을 메트로폴리탄으로 키우기 위해 주변 도시를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다시 알메러 개발을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알메러는 암스테르담의 형편에 따라 냉탕·온탕을 왔다 갔다 한 셈이다.

이젠 알메러도 독자적으로 해외 기업 유치를 통해 본격적인 자립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네덜란드 경제부 장관과 교통부 장관을 지낸 뒤 2003년 시장에 취임한 레빙크 시장은 해외 기업 유치를 위해 수시로 외국을 드나든다고 했다. 서울에도 수 차례 다녀갔단다. 인터뷰 중간에도 “한국 기업들에 알메러가 얼마나 매력 있는 도시인지 잘 써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이미 LG가 알메러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IBM, 필립스 등 유명 해외 기업들의 암스테르담 지사가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이처럼 독자적인 신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뛰고 있는 신도시로는 광교가 대표적이다. 현재 건설 중인 광교 신도시는 서울과 가깝고 정보기술(IT) 산업 기반을 잘 갖췄다는 점을 부각하며 해외 기업을 유치하는 등 베드타운의 위상에서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알메러(네덜란드)=신혜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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