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春秋)말 오(吳) 합려(闔閭)가 월(越) 구천(句踐)에게 패하여 죽자 아들 부차(夫差)는 매일 장작더미 위에서 자면서(臥薪),절치부심(切齒腐心)한 끝에 마침내 구천을 사로잡아 아버지의 복수를 갚았다.
그러자 패배한 구천 역시 겉으로는 오왕의 신하인 척 하면서도속으로는 쓸개를 하으면서(嘗膽)역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유명한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다.
그 사실을 부차가 모를 리 없었지만 그는 어느새 자만과 교만에 빠져 있었다.하지만 그에게는 한가지 걱정이 있었다.
본디 제후와 회맹(會盟)할 때 맹약(盟約)을 만천하에 과시하기 위해 쇠귀를 잡고(執牛耳)피를 빠는 절차가 있는데 지난 번진(晋)의 문공(文公)과 서로 먼저 하겠다고 다투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맹약은 지지부진하여 지금까지 오고 말 았던 것이다.
그때 본국에서 월의 구천이 군사를 일으켰다는 연락이 왔다.급한 나머지 진 문공을 위협하여 쇠귀를 먼저 잡는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부차는 진정한 패자(覇者)는 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오나라는 월의 반군에 연전연패,마침내 부차는 자결하고 말았다.
집우이(執牛耳)는 옛날 맹약절차의 하나로 쇠귀를 잡고 째서 피를 빨아먹는 것을 말한다.
패자가 먼저 잡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패업(覇業)」이라는뜻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