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한, 모든 핵 신고 약속만 하면 적성국 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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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행정부의 대북 협상파와 한국 정부가 북한의 완전한(complete) 핵 프로그램 신고 대신 부분·단계별 신고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워싱턴 소식통이 27일 밝혔다. 소식통은 “이들은 북한이 신고서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과 (시리아) 핵 확산 의혹은 비공식(private) 채널에서 계속 논의한다’는 주석(footnote)을 명기하는 데 동의한다면 북한이 지금까지 신고 내용으로 주장해 온 플루토늄(약 30kg) 신고만으로 신고서를 받아들여 돌파구를 연다는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는 “북한이 이 같은 주석을 단 신고서를 제출할 경우 미국은 즉각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과 적성국 교역 제재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북핵 폐기를 위한 최종 협의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소식통은 “이번 주 방북할 왕자루이 중국 당 대외연락부장이 미국의 이 같은 제안을 평양 수뇌부에 전하고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식통은 “지난 8일 방한했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교착 상태에 빠진 불능화 및 신고 단계의 빠른 종결을 위해 이 같은 방안을 논의했다”며 “이어 10일 방중한 힐 차관보가 중국 측에 이 방안을 제시하며 북한을 설득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이 방안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까지 동의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워싱턴의 미 행정부 의중을 다각도로 탐색한 끝에 방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이 방안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는 다음달 말 안에 신고 문제가 일단락되고 비핵화 최종 논의 단계가 개시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북한은 이 방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으나 미국 의회 등 워싱턴의 대북 강경파들이 강력히 반발할 우려가 높아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뉴스 분석

북핵의 단계별 신고 절충안은 미국 행정부 협상파의 고육책이다. ‘완전한 신고’를 관철하려다 교착 상태가 너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에 UEP와 시리아 핵 확산 의혹을 포함한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신고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UEP의 존재와 핵 확산 사실을 부인했다.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부시 행정부로서는 답답한 상황이다. 북한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압박책으로 돌아가기도 어렵다. 임기 말 업적(legacy)에 ‘북핵 진전’이 들어가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특히 힐 차관보를 비롯한 국무부 협상파는 북한이 우라늄과 확산 문제를 ‘완전하게’ 신고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관계자들도 8일 방한한 힐 차관보에게 비슷한 의견을 제시하면서 “임기 중 마지막 시도(Last push)를 해보자”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이 “그동안 추출한 플루토늄 생산량은 약 30㎏”이라고 제시하고, 플루토늄에 대한 특별사찰도 받을 수 있다는 뜻을 비치고 있어 힐 차관보는 북한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선 플루토늄 문제만이라도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걸림돌이던 UEP와 핵확산 문제는 ‘비공식 채널’에서 계속 논의하겠다고 신고서에 주석을 다는 것으로 서로 체면을 차리자는 것이다.

하지만 걸림돌도 적지 않다. 우선 협상파와 부시 대통령 간에 절충안을 놓고 교감이 이뤄졌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미 의회와 워싱턴 강경파의 반발이다. 이들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UEP와 핵 확산 문제를 ‘추후 논의한다’는 한마디로 사실상 덮고 가려는 술수”라고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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