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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선고’ 통일부, 살아남아도 미니 부서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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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11면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18일 통일정책평가회의를 하기 위해 역대 장관들의 사진이 걸린 통일부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정권 인수위가 통일부를 폐지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내놓자 통일부는 패닉 상태에 빠졌고, 각계에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부 폐지 논란이 뜨겁다. 신 권력과 구 권력, 보수와 진보가 통일부의 존폐가 걸린 정부조직법안의 국회 통과를 두고 정면충돌할 기세다.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통일부 통폐합은 절대 협상용이 아니다”고 못을 박았다. 급기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에서 “통일부를 없애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나”란 말까지 나왔다. 4월 총선의 쟁점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통일부를 그대로 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던 기류를 뒤집고 ‘사형선고’에 가까운 결론을 내린 데에는 이 당선인의 인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 당선인의 의중을 반영해 폐지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안 발표 당일인 15일 아침까지도 살아남는 것으로 알고 안심했던 통일부는 조직 전체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인수위는 조직개편안 설명 자료에서 “외교와 통일의 연계로 시너지효과를 도모하기 위해 외교부와 통일부를 통합하여 ‘외교통일부’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대외정책과 남북관계가 따로 움직이면서 때로는 서로 충돌하고 부처 간 갈등을 빚기도 했던 현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외교정책과 통일정책의 긴밀한 조율을 강조했지만 그 무게중심이 외교 쪽에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이면엔 햇볕정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깔려 있다. 특히 이 당선인 본인의 인식이 확고하다고 인수위의 핵심 관계자는 전한다(이 관계자는 이명박 당선인이 대선 후보였을 때부터 수시로 함께 세미나를 하며 외교안보정책의 얼개를 짰다).

“퍼주면서도 북의 눈치를 보며 끌려다니는 행태에 대해 당선인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대북 지원이 아쉬운 쪽은 북인데 오히려 남이 더 목을 매고 매달리는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북 지원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대북 지원을 지렛대로 활용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북에 끌려 다니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시절부터 숱한 협상을 경험했던 당선인으로선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지난 10년 동안 당근 일변도의 협상 태도가 체질화된 기존의 통일부 조직을 그대로 끌고 가는 한 채찍 사용도 불사하는 차기 정부가 대북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읽힌다.

통일부 폐지론이 확산된 데에는 최근 10년 동안 권한이 커진 통일부에 대한 정부 내 다른 부처의 불만이 한몫했다는 설명도 있다. 외교통상부의 한 당국자는 지난해 통일부와 함께 대북 협상에 임했던 경험을 이렇게 전했다.

“내가 보기에 통일부 사람들은 협상의 기본이 안 돼 있다. 내 경우 북한과의 협상보다는 오히려 정부 내 입장 조율에 더 애를 먹었다. 협상카드를 꺼내기도 전에 통일부는 ‘이건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며 제동부터 걸었다. ‘그렇게 나가면 북한이 싫어할 게 뻔하니 말을 안 꺼내는 것이 좋다’는 식이다. ‘북한 사람들의 생리를 잘 몰라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란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말과 달리 실제 회담장에서 우리 의견을 제시하고 설득했더니 북측도 끝내는 받아들여 주었다.”
비단 외교부뿐만 아니라 정부 내 다른 부처에서 광범위하게 퍼진 인식이 인수위로 전달됐고 당선인도 이를 모를 리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가운데 통일부를 외교부에 통폐합하는 방안에 대해 찬성하는 쪽은 대체로 행정학자들이다. 유사기능 통폐합을 통해 정부조직의 효율화와 슬림화를 이룰 수 있다는 발상에서다.

하지만 북한 전공학자나 전문가, 실제로 현장에서 북한과 접촉하거나 협상하는 일이 많은 북한 관련 시민단체들은 한목소리로 통일부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헌법과의 정합성을 따지는 이론적 반론에서부터 현장에서 북한과 접해보면 대외 정책과 대북 정책의 조율이 얼마나 어려운지 금세 알게 된다는 현실론에 이르기까지 그 논리도 다양하다. 북한 전문가들의 ‘밥그릇’과 관련된 사항이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의 반론 중에는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 많다.

학자들은 통일부의 존폐 문제를 국가 정체성의 차원에서 바라본다. 북한을 대한민국의 일부로 규정한 헌법 정신은 물론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분단국가로서의 역사적 특수성과 평화통일이란 헌법적 가치를 경시하고 대통령 스스로 취임선서에 포함돼 있는 통일 책무를 망각한 시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대북 업무가 외교부로 통합되면 북한을 외교의 대상인 ‘국가’로 인정하는 격이 되고 이는 “이명박 정부=‘투 코리아’를 지향하는 반통일 정권”이란 비판의 빌미를 제공해 남북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독일도 통일문제를 외무성이 아닌 내독성에서 다뤘고 중국도 외교부가 아닌 국무원 직속의 대만공작소에서 대만 문제를 다루고 있다”며 “외교부와의 통합은 기상천외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외교장관이 대외 협상과 대북 협상을 동시에 책임지게 되면 운신의 폭이 좁아져 북핵 폐기 등 당면 현안에 대한 대처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반론도 있다. 미국과 대북 압박을 논의하면서 동시에 북한과 교류·협력을 추진하게 되면 인수위가 내건 시너지효과는커녕, 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적에는 외교부 당국자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오히려 통일부의 위상을 강화하고 남북 협의 수준을 격상시켜 북핵 포기 대가로 남한으로부터 얻을 것이 많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북핵 해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1일 국회에 제출된 정부조직법안 심의 과정에서 통일부의 운명에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설령 법안에 수정이 가해져 통일부가 독립부서로 존속된다 하더라도 그 조직과 권한이 대폭 축소될 것이란 사실이다.

인수위의 개편 방안에 따르면 대북 경제협력은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 등 관련부처로 넘기고 대북 정보분석은 국가정보원으로, 탈북자 정착 지원은 지방자치단체로 각각 이관된다. 인도적 지원은 대한적십자사로 넘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남북대화 업무와 통일정책 수립 기능만 남게 되고 인원도 100여 명으로 줄어든다. 쟁점은 그 남은 부분이 인수위의 안대로 외교부로 흡수되느냐, 아니면 통일부로 유지되느냐의 문제다.

여기에다 남북 교류협력기금(2008년의 경우 1조2198억원)의 편성·집행 권한이 재정경제기획부로 이관될지도 관심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이 처음에는 국정원 쪽을 중시하고 통일부를 경시하다가 돈줄이 통일부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통일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며 “교류협력기금이야말로 통일부 권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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