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개발현장>제일합섬硏 초극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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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제국경 없는 무역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수단은 이제세계 초일류의 기술경쟁력을 갖추는 일이다.1등만이 살아남는 치열한 품질경쟁 시대를 맞아 산업현장은 올들어 기술개발의 열기가더욱 뜨거워지고 있다.초일류기술 개발을 위해 기업들이 벌이고 있는 소리없는 「전쟁터」를 둘러본다.
[편집자註] 2월24일 밤10시.구미공단에 위치한 제일합섬 기술연구소.
섬유연구실 쪽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컴퓨터 기계음이 겨울밤 정적을 깨뜨리고 있다.
오후4시쯤 다른 직원들은 모두 퇴근했지만 김기호(金基湖.32)과장을 팀장으로한 신합섬연구팀 4명은 새로 시험에 들어간 초극세사(超極細絲)의 성능분석에 밤이 새는 줄 모른다.
초극세사란 머리카락 굵기 이하의 가는 폴리에스테르 섬유(絲). 金과장팀이 추진중인 프로젝트는 초극세사를 만드는 여러가지 방법중 직접방사법(直接放絲法)에 의한 0.3데니어급 실의 제조다.이는 머리카락 굵기의 3백분의 1에 해당한다는 게 金과장의설명이다.
『직접방사법의 경우 재료인 폴리에스테르를 녹인 뒤 가는 쇠구멍을 통해 빨아내는 방법이 사용되는데 이때 주변 온도를 얼마나균등하게 냉각시키느냐에 따라 실의 가늘기가 결정됩니다.』 따라서 金과장팀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시험을 거듭하고 있는 부문은주변 온도를 적절히 조절하는 방법이다.
90년대초 0.5데니어급의 개발때도 이 점이 가장 애를 먹였다. 『실의 가늘기는 그 실로 만든 원단의 부드러운 정도와 색감(色感)을 좌우합니다.인류가 만든 가운데 아직 초극세사만큼 가는 실은 없습니다.』 초극세사는 미래의 신소재로 떠오르는 각종 첨단 화섬소재의 핵심재료가 되기때문에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을 겨냥하는 화섬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기술경쟁에 나서는 분야라고 金과장은 설명한다.그러나 제일합섬등 국내 화섬업체들의 초극세사 제조 기술은 아직 일본에 턱없이 뒤지고 있는 실정.초극세사 제조기술에서 세계최고 수준을 인정받는 일본의 경우 현재 직접방사법에 의해 0.1데니어급의 각종 화섬사를 생산해내고 있다. 70년대 초부터 초극세사 개발에 착수한 일본은 90년대들어이미 시험단계를 벗어나 초극세사를 이용한 각종 신합섬을 양산,수출하고 있는 단계다.이에 비해 한국은 일본이 80년대말에 양산했던 종류의 초극세사를 개발,일부 품목을 동남아 .아프리카등에 수출하고 있는 정도.물론 가격도 일본제품에 비해 싸다.
金과장팀의 목표는 올해중 0.3데니어 개발에 성공하고 곧바로세계 최고 수준인 0.1데니어급에 도전하는 것이다.
『가늘기면에서 당장 일본을 따라 잡는 것은 어렵다고 봅니다.
때문에 더욱 가는 실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이는 한편 이미 개발해낸 초극세사를 보다 효율적으로 염색가공처리해 제품경쟁력을 높여나간다는 전략입니다.』 실제로 제일합섬은 93년에 개발한 10~20데니어급의 초극세사로 비슷한 데니어급의 일본제품보다 감촉및 색상이 뛰어난 원단 「걸프」를 생산,최근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또 이미 개발된 각종 초극세사를 소재로 소모방 원단의 효과를내는 「베스모」,복숭아껍질처럼 까실까실한 느낌을 주면서도 감촉이 부드러운 「샤멜론」등 10여가지 신합섬을 개발,국내외 시장에 내놓고 있다.
金과장팀의 올해 최대 과제는 『더 가는 초극세사를,더욱 다양한 제품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회사측은 올해 신합섬연구팀을 지원하기 위해 박사급 연구원 2명을 포함한 15명의 연구원을 충원하고 연구개발비도 작년보다 20% 늘어난 3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龜尾공단=林峯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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