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은 한 몸 … 분리 안 돼 과기부 폐지는 최악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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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과학기술부 및 관련 기관 직원들이 과기부 폐지에 반대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직 인수위의 과학기술부 폐지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행정학자와 과학자들이 바라보는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시각이다. 인수위의 안대로 확정된다면 과학기술의 속성상 그 후유증이 10~20년 뒤 심각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연구를 중단하더라도 당장에는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지만, 10~20년 뒤 기술이 필요할 때에는 큰 구멍이 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수위가 과학기술부를 쪼갠 것을 놓고 연일 과학계가 들썩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과학기술부 폐지가 가져올 영향과 대안을 찾아본다.

 ◇구시대적 발상=인수위가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은 세 가지로 꼽힌다. ▶과학과 기술의 분리▶기초기술은 교육부(교육과학부)에▶응용기술은 산자부(지식경제부)에 넘기는 것 등이다.

 한남대 조만형(행정학) 교수는 “세 가지 모두 세계적인 흐름과 미래에 대한 생각 없이 결정한 것으로, 최선책은 과학기술부를 그대로 두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차선책으로라도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과학’과 ‘기술’은 한 몸으로 인식한다. 과학계는 “두 가지를 따로 떼어내 별도로 다룰 성질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기초기술을 교육부에 이관하는 것도 성격상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은 수월성(秀越性)을 위주로 하는 반면 교육부는 평등 정신에 입각한 시민 교육 위주여서 서로 성격이 다르다. 현 교육부 체제를 거의 그대로 두고 과학만 붙여 놓는다는 것은 물과 기름 격으로 서로 겉돌 게 뻔하다. 산자부에 응용 기술을 붙이는 것도 시대 흐름을 잘 못 읽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 교수는 “ 선진국과 개도국의 분수령은 국민소득 2만 달러를 기준으로 본다”며 “2만 달러 이상의 국가는 산업 기술의 경우 산업체 자체에 맡기는데 새 정부는 국가가 여전히 주도하겠다는 발상”이라고 분석했다.

 현 산자부의 경우 에너지와 중소기업 등 산업 육성만 해도 할 일이 너무 많은 실정이다. 거기에 응용 기술 육성까지 짊어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현 개편안이 그대로 적용되면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단기 성과 위주의 생산기술과 실용화 기술에 몰입, 연구 현장에서 원천기술 연구가 사라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물리학회 김정구(서울대 교수) 회장은 “교육과학부에서는 과학이 교육에 묻히고, 지식경제부에서는 산업 육성에 기술이 묻힐 것”이라며 “새로운 체제가 되면 거대 과학이나 장기 연구가 실종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국은 중앙집중식이 맞아=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는 연간 약 10조원, 일본은 70조원, 미국은 200조원이다.

연구비가 적은 한국과 같은 나라는 중앙에서 총괄, 기획·조정하는 체제가 알맞다는 게 행정학자들의 분석이다. 일본은 복지후생에만 20조원을 투자하는 등 어느 정도 규모가 되기 때문에 기능별 분산형을, 미국과 같은 대규모 연구비를 가진 나라는 부처 개별형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인수위는 중앙집중식이 강화돼 가고 있는 국내 과학기술 행정체제를 둘로 쪼갠 셈이다.

 ◇대안은 없나=조 교수는 과학기술부를 그대로 둘 수 없다면 새로 개편하는 체제에서 적용할 수 있는 차선책을 제시했다.

‘교육과학부’의 명칭을 ‘교육과학기술부’로 고치고 현재의 과학기술부 기능을 거의 그대로 이전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40년 동안 쌓아 온 과학기술 정책 지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통합의 후유증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또 한 가지 방안은 인수위 안을 따르되 대통령 또는 총리실 산하에 과학기술 총괄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다.

 과학기술부는 3년 전 과기부총리 체제가 출범하면서 산업과 정보통신, 교육 등과 관련한 업무 대부분을 각 부처에 넘겨 준 상태다. 현재 과기부에 남아 있는 기능은 국가의 과학기술 청사진을 그리고, 조정하는 데 필요한 최소의 기능이 남아 있는 상태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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