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스포츠와 에이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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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0년대말 에이즈가 처음 발생한 이후 20년도 채 못돼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2천만명을 헤아리기에 이르렀다.사망하는 에이즈 환자가 하루 5백명을 넘어선게 지난해였다.
에이즈에 감염됐다 하면 죽을 날만 기다리는게 현실 이니까 에이즈 환자의 성별.연령.직업 따위를 따지는 일은 별로 의미가 없다.그러나 세계적인 저명인사,그중에서도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친문화예술인.체육인이 감염됐거나 사망하면 모든 사람에게 충격을 던져준다.늘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 던 친근한 벗을 잃게 됐다는 아쉬움 탓도 있지만 해당국 예술.체육계에도 심각한 영향을미치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재능있는 스타들을 에이즈로 빼앗긴 미국(美國)은 특히 이 점을 아쉬워한다.예컨대 87년 안무가이자 감독인 마이클베닛의 죽음으로 새 세대로 이어질 맥이 끊겼다고 생각하며,그보다 몇해 뒤 음반업계의 귀재(鬼才)피터 워들랜드 의 죽음으로 바로크 음악의 리바이벌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본다.
특히 에이즈로 사망하는 예술.체육계 탤런트들이 한창 정력적으로 활동하면서 더 큰 업적을 남길 나이에 삶을 마감함으로써 국가적으로 치명적인 손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와 관련한 흥미있는 비유가 나오기도 했다.한 조사보고에 따르면 미국에서 에이즈로 죽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35세에 불과한데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의 절대다수는 35세 이후의 미술가들에 의해 제작됐다는 것이 다.맥이 끊길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스포츠의 경우 젊은 선수들의 에이즈 감염에 의한 사망은 더욱 큰 손실로 간주된다.이같은 현상을 일컬어 미국의 한 사회비평가는 『미국 문화.체육계의 심장이 잘려 나가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 일도 있다.특히 스포 츠 선수들은자신의 건강만 믿고 에이즈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어 감염되기만 하면 보통 사람보다 더욱 빨리 죽는다는게 정설처럼 되어있다. 88년 서울올림픽 다이빙 금메달리스트였던 미국의 루가니스가『당시 에이즈에 감염돼 있었으며,머리를 크게 다쳐 피를 흘리고도 금메달을 땄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자서전 『껍데기를 깨뜨리고』를 출간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풀에 흘린 피가 에이즈를 감염시킬 위험성은 없다는게 의료진의견해지만 함께 호흡하고 서로 접촉해야 하는 스포츠 선수들로서는찜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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