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재벌 2,3세들의 무차별적 금융업 확장 속사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재벌 2·3세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경쟁적으로 증권업에 진출하거나 관련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금산분리 완화를 비롯한 금융규제 개혁을 추진키로 했다는 발표와도 연장선상에 있다. 인수위 관계자는 17일 “금융산업 선진화 차원에서 감독기구 개편과 더불어 규제완화를 추진할 것이다” 며 “금산분리 등 진입규제 완화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내년 초로 앞두고 재벌그룹의 증권업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증권업계는 지각변동이 한창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벌 2·3세들의 무문별한 외형확장은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재벌들의 금융영토 확장 실태를 들여다봤다.

증권업계의 지각변동 스타트는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이 끊었다.

지난 14일 신흥증권은 현대차그룹과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현대차그룹은 증권업 진출을 계기로 업무 영역의 확대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낼 뿐 아니라 자금 조달도 한층 쉬워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10일 현대해상화재보험은 금융그룹화 전략의 일환으로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을 설립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3남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은 이미 금융계열사로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을 소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신흥증권까지 인수함으로써 다양한 금융연계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됐다. 특히 내년 2월부터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증권사도 지급결제 업무를 할 수 있게 돼 신흥증권 인수 시너지 효과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현대증권을 운영 중인 범현대가의 두 증권사 경쟁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재벌가가 말하는 시너지효과의 의미

현대증권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5남인 고 정몽헌씨의 부인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에 속해 있다. 현대증권은 이른 시일 내에 자산운용사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으로 운용사 설립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현재 가동하고 있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인 고 정 명예회장의 7남 정몽윤 회장도 최근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을 설립해 자산운용업에 뛰어들었다.

현대해상은 금융그룹으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어 증권업 진출이 거론되고 있다.

고 정 명예회장의 셋째 동생 고 정세영 회장의 장남으로 현대산업개발을 이끌고 있는 정몽규 회장도 자산운용사인 아이투신운용 지분 85.98%를 보유중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정몽윤 회장이 이끄는 현대해상이 자산운용업에 뛰어든 것은 자산운용업 진출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보험사 성장전략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CJ·동부·동양 등 중견그룹도 도전장

증권업계 관계자는 “근래 들어 재벌가 제조업체들이 증권업과 자산운용업을 병행하려는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그룹 오너의 3세인 박용만 회장이 이끄는 두산인프라코어도 지난해 10월 중견 할부금융업체인 연합캐피탈의 지분 20%를 사들였다.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캐피탈도 BNG증권중개를 인수했다.

유재필 창업주의 첫째아들인 유경선 회장이 이끄는 유진그룹도 지난해 서울증권을 인수한 후 사명을 유진투자증권으로 바꾸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신동빈 부회장이 이끄는 롯데그룹도 지난해 12월 대한화재를 인수해 사업영역을 확대한데 이어 코스모투자자문의 인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심그룹도 신춘호 회장의 3남인 신동익 부회장이 자본금 200억원 규모의 ‘농심캐피탈’을 지난해 10월 설립했다. 농심도 캐피탈사를 기반으로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인수 또는 설립 등 추가적인 금융업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밖에 이미 금융업에 진출한 CJ·동부·동양그룹 등 재벌가 2, 3세들은 경쟁자들의 잇따른 도전에 시장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80년대 금융업에 뛰어들었던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동양종금증권을 포함한 동양그룹 금융계열사를 미국의 골드만삭스 같은 투자은행(IB)을 만들겠다고 밝힌바 있다.

이 같은 재벌가 2·3세들의 잇단 금융업 진출에 대해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 차원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무분별한 외형 확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증권업 진출을 계기로 재벌가의 중소형 증권사 인수·합병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신흥증권 인수를 계기로 다른 중소형 증권사도 상장 증권사의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기준이 제시돼 앞으로 중소형 증권사의 인수합병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소형증권사인 교보·부국·에스케이·유화·한양증권 등이 잠재적인 인수합병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산업은행 민영화와 맞물린 대우증권과 M&A설이 끊이지 않는 현대증권이 대형증권사 매물에 속한다.

재벌이 증권업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내년 2월 자통법 시행으로 증권사에 지급결제 업무가 부여되면 금산분리 원칙으로 막혀 있는 은행업에 간접 진출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캐피탈, 카드 등 기존 금융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악몽 재연?

그러나 대기업의 제2금융권 진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산업과 금융은 경영의 원리나 전략이 다른 만큼, 경영을 잘못했다간 해당 그룹은 물론 국가경제 전체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탓이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비쳤다. “외환위기 때 직접적인 원인은 종금사들의 잇단 부도사태로 나라가 흔들렸고 대부분의 종금사가 재벌소유였다. 재벌사가 소유한 카드사도 물고 물려 위기에 처했었다. 일부는 금융계에 넘어가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신용카드를 남발했고 신용불량자를 400만이나 양산했다. 현재는 260만 정도로 줄긴 했으나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위기 이후 핵심 역량에 집중하도록 한 재벌 개혁의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어서 우려스럽다. 최근 삼성 사태로 보듯 재벌회장의 비자금 관리 등을 해주는 등 기업들 입장에서는 좋을 수도 있으나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운영하면 경제의 균형이 무너지는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도 “자본주의 원리상 금융기관은 산업자본을 감시해야 하는데 재벌들이 금산분리 완화 분위기와 함께 제2금융업에 마구 진출하는데, 제2금융권의 지배 현상이 심화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고뉴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