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름다운 간판, 나라 格을 높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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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서울시와 중앙일보가 종로를 시범지역으로 선정해 간판 업그레이드 사업을 시작했다. 울긋불긋하고 혼란스러운 간판이 도시경관을 해치는 정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간판이나 광고의 모습은 한 사회의 문화 척도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간판 업그레이드는 단순한 거리 경관 개선 차원을 넘어 우리의 삶과 도시문화의 질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현재 서울시내 간판은 73만7000여개로 그 가운데 35%가 불법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한 해 동안 서울시가 정비한 불법간판 수만 해도 7만여건을 넘는다. 불법간판이 아닌 것들도 미적(美的)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판은 개별 업소들에는 홍보 역할을, 시민들에게는 정보제공 역할을 해주는 순기능을 가졌다. 그러나 더 크게, 더 많이, 더 자극적으로 만들기 경쟁이 되면서 간판은 도시경관을 망치고 있다. 또 부실한 간판이나 길을 가로막는 옥외광고물들은 보행자들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과거에도 간판 및 광고물 정비는 되풀이됐었다. 그러나 단속할 때 잠시뿐 지속적인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특히 품위 있는 간판 달기 캠페인도 간헐적으로 있었으나 관(官) 주도가 되어 지속성을 갖지 못했다.

이제 주민과 업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간판개선사업이 펼쳐져야 한다. 이번 '종로 간판 업그레이드 사업'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행사라는 점이 기대를 갖게 한다. 건물의 외관개선 비용 융자와 간판정비를 위한 보조금 지급 등의 인센티브 전략은 그동안의 규제일변도에서 크게 진전한 것이다. 이런 시범사업을 통해 자극적이거나 지나치게 큰 간판이 아니라도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규제나 지시가 아니라 자발적인 아이디어로 다양하고, 창의적인 간판 만들기를 유도해야 한다. 이 운동을 확산시켜 서울 종로뿐 아니라 전국 도시의 간판들이 아름답게 바뀌어 나라의 격조가 한 단계 올라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