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69. 명금과의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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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친구 집의 장작을 쌓아놓은 곳에서 발견한 가야금. 줄도 없었지만 한눈에 명금임을 알 수 있었다.

가야금은 고생하면서 자란 오동나무로 만들어야 좋은 소리가 난다. 비옥한 땅에서 쉽게 무럭무럭 자란 오동나무는 좋은 재료가 못 된다. 야생 오동이라야 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바위틈에서 자라다가 스스로 말라 죽은 오동, 이른바 ‘석상자고동(石上自枯桐)’이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나무는 빨리 자라지 못하고 간신히 자라기 때문에 매우 단단하고 나이테가 아주 촘촘하다. 그런데 오동은 다른 나무에 비해 무른 편이다. 따라서 무른 나무 중에서도 가장 단단한 것을 골라 가야금을 만든다고 보면 된다. 즉 음(陰)과 양(陽)의 조화, 반대되는 것끼리의 조화를 이룬 게 이 악기다.

이러한 오동의 색깔은 대춧빛처럼 검붉다. 대춧빛 오동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한번은 길을 걷다가 초등학교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우리 집이 근처에 있으니 잠깐이라도 들어왔다 가라”고 해 그를 뒤따랐다. 아주 오래된 한옥이었다. 어쩐지 가야금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 악기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가야금이 하나 있긴 한데 다락에서 굴러다니고 있어. 아무도 안 치다 보니 줄이 하나도 없어서 바깥에 쌓아놨지.” 그는 가야금을 다름 아닌 장작을 쌓아놓는 곳에 함께 세워둔 것이었다. “뭘 굳이 보려고 해. 가야금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건데”라고 하는 그의 옆에 아주 검붉은 색이 기가 막히게 밴 가야금통이 하나 서 있었다. “이거 나한테 팔아라.” 그는 “팔긴 무얼 팔아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악기에는 진흙까지 묻어 있었다.

나는 이 악기를 신문지로 대충 싸서 집으로 가져와 바로 줄을 걸었다. 엄청난 소리가 나왔다. 가야금의 머리에는 옥으로 된 조각도 박혀 있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법금(정악을 연주하는 가야금)들 중 명금(名琴)이 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해서 며칠 뒤 그 친구를 다시 찾아가 돈을 반강제로 쥐어주었다.

1960년대 어느 날에는 저녁을 먹은 뒤 산보를 하고 있는데 어디서 가야금 소리가 들려왔다. 허름한 초가였다. 서울 시내 궁들을 옮겨 다니며 수위 일을 하는 나이가 꽤 든 분이 그 곳에서 가야금을 뜯고 있었다. 빠듯한 살림이었지만 순수한 취미로 가야금을 타는 사람이었다. 10여 년이 지나 그의 아들이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악기를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소리가 나쁘지 않은 악기였다. 이 악기를 연주할 때마다 그 노인의 순수한 열정이 느껴진다.

나는 지금 25대의 가야금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는 서울 인사동 고물상에서 눈에 띈 것도 있다. 대학생 때 스승 김윤덕 선생이 칭찬한 악기를 그 자리에서 사겠다고 한 적도 있다. 지금은 인간문화재 고흥곤이 만든 악기를 즐겨 쓰고 있다. 각 악기와 나 사이의 교감은 이러한 기억을 공유하는 데서 생긴다.

황병기<가야금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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