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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전창진 ‘명장의 신화’ 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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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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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리그 최소경기에서 200승 달성요? 며칠 전에 기자들이 전화로 물어보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이렇게 무심하다. 매 경기에 집중하다 보니 자신이 통산 몇 승을 올리고 있는지, 어떤 기록을 세우고 있는지도 관심이 없다. 프로농구 동부의 전창진(45) 감독. 18일 창원 경기에서 LG를 69-67로 제압하고 200승 고지를 밟았다. 그것도 135패 만에 달성한 최소경기 200승 기록이다. 지금까지 신선우(LG), 유재학(모비스), 김동광(SBS해설위원), 김진(SK) 감독이 200승 문턱을 넘었지만 패전 수가 전창진 감독보다 많은 상태에서 나왔다. 그만큼 덜 지고 많이 이겼다는 뜻이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위가 매서웠던 16일 오후. 강원도 원주 치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동부 농구단 숙소에서 그를 만났다.

 ◆나를 일깨운 건 후보들의 눈물=2002년 동부의 전신 삼보 사령탑으로 감독에 데뷔한 이후 지난해까지 다섯 시즌 동안 그는 챔피언결정전과 정규리그 우승을 두 차례씩 차지했다. 명감독이 된 비결을 전창진 감독은 삼성전자 주무(매니저) 시절 후보들의 눈물에서 찾았다.

“감독한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저에게 털어놓는 선수가 많았거든요.” 그가 볼 때 후보 선수 중에는 감독의 전술을 충분히 이해하고 능력도 뛰어난 선수가 꽤 있었단다. 그런데 ‘후보 주제에’라는 자격지심에 감독한테 의사표시를 못하는 바람에 그냥 묻혀 버린 선수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형 같으니까 울먹이며 하소연하는 선수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는 “감독할 기회가 되면 저런 부분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때부터 선수들이 처한 상황과 심리를 잘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 동부엔 다른 팀에서 벤치를 지키다 이적해 와서 주전으로 뛰고 있는 선수가 여럿 있다. 강대협은 SK, 표명일은 KCC의 식스맨이었으나 동부에 와서 주전급으로 코트를 누비고 있다.

 ◆주무 출신이 무슨 감독을 해?=그가 주무로 일했던 것은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일찍 접었기 때문이다. 서울 상명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공을 잡은 뒤 용산중 3학년 때 당한 발목 골절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실업팀 삼성전자에 데뷔한 지 1년 만에 뒤늦게 수술대에 올랐다. 1988년이었다.

 “그게 화근이었어요. 수술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통증이 심해져 코트에 나설 수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수술은 은퇴로 이어졌고 그는 구단 주무(매니저)로 새출발했다. 10여 년의 주무 생활을 거쳐 2002~2003 시즌 삼보(현 동부) 감독을 맡은 그는 데뷔 첫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냉랭했다. “주무 출신 주제에 좋은 선수 만나 운으로 우승했다”는 시기 어린 목소리가 많았다.

 “스타 선수 출신이 아니었으니까요. 솔직히 농구판 밖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선배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더군요. 그땐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한 시즌 최다인 40승을 일궈 내며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비아냥은 수그러들었다.

 ◆부드러운 ‘치악산 호랑이’=그는 ‘기러기 아빠’다. 8년 전 아내 정인옥(42)씨와 승한(16), 승아(11·여) 남매를 캐나다로 떠나 보낸 뒤 선수단 숙소가 일터이자 거처인 셈이다. 코트에서 그는 누구보다 격렬하다. 선수들에게 핏대를 세우며 작전지시를 하고 판정이 이상하다 싶으면 심판에게도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치악산 호랑이’. “주위에서 이미지 관리 좀 하라는 소릴 많이 듣는다”고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게임에 나서면 승부욕이 강해져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승부사다운 말이다.

하지만 코트 밖에서는 다르다. 수줍음도 많고, 누가 무슨 말을 하면 금세 얼굴이 붉어진다. 외모는 주당일 것 같지만 술도 거의 마시지 못한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가슴이 콩닥거리고 잠이 쏟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신 술자리는 빠지지 않는다. 특유의 입담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육중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릴 줄도 안다. 최근에 본 영화는 핸드볼 선수들의 투혼을 그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같은 스포츠인으로서 많이 공감했고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다시 200승 달성으로 이야기를 돌리자 그는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며 손사래를 쳤다.

원주=장주영 기자



“운이 좋았을 뿐 선수가 주인공”

 전창진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최소 경기 200승 달성 대기록을 선수들의 공으로 돌렸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소 경기 200승 달성한 소감은.

 “200승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운이 좋은 감독이다. 좋은 선수들을 만났고, 그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이다. 선수들한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오늘 LG 경기는 쉽지 않았는데.

 “정말 힘든 경기였다. 강대협과 이세범이 경기 직전 각각 종아리 부상과 감기로 빠지게 되면서 처음부터 계획이 어긋났다. 오늘 득점은 적게 올렸지만 김주성이 수비에서 그 공격 이상의 몫을 해주었고, 주장인 (손)규완이 중요한 고비에서 외곽 슛을 터뜨려 줘서 이길 수 있었다.”

 이날 상대는 맨 먼저 200승을 돌파했던 LG 신선우 감독. 신 감독은 경기 초반 골밑 협력수비로 동부의 공격을 저지했고, 공격에서는 과감한 골밑 돌파로 상대를 압박했다. 전 감독의 기록 달성을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손규완은 주장답게 “구단에서 200승을 달성한 전 감독에게 뭔가 큰 상을 내려줘야 한다”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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