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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한·미관계 명쾌한 비전 인상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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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5년 10월 부임한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빡빡한 일과 속에서도 ‘드럼치는 대사’로 한국인에게 친근감을 줘왔다. 인터뷰 도중 드럼에 대한 질문을 받자 손으로 드럼 치는 자세를 보이며 즐거워하고 있다. [사진=김형수 기자]

만난 사람=김진국 국제담당 에디터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17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를 만났다. ‘한·미 관계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운 새 정부에서 한·미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버시바우 대사의 생각을 들어봤다.

-최근 유명한 미국의 지한파 인사들이 방한해 이명박 당선인을 만날 때 자리를 함께했다. 당선인에게 조언한다면.

“한·미 관계에 대해 명쾌한 비전이 서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나 북핵 문제 등 시급한 현안에 대한 인식이 내가 조언할 필요가 없을 만큼 분명한 코스로 잘 가고 있다. 대통령 취임 후 봄께 방미하는 걸 양국 정부가 추진 중이다.”

-전임 미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새로 낸 책에 “한국인은 고마워할 줄 모른다”고 썼다. 어떻게 생각하나.

“올브라이트 전 장관을 매우 존경하고 좋아한다. 하지만 한국인에 대한 언급엔 동의할 수 없다. 외교·무역 관계, 오가는 관광객과 유학생 수 등 모든 면에서 두 나라는 우정과 존경의 유대감이 매우 강하다. 반미 감정이 피크에 달했던 것이 2002년 대통령 선거 때다. 하지만 그 뒤로 바뀐 한국의 분위기는 미국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국 상원의원 2명이 4년 만에 최근 한국에 와 보고 바뀐 분위기에 매우 놀라고 돌아갔다.”

-반미 감정이 약해진 이유는.

“양쪽 정부가 함께 반미 감정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 달라진 상황에 맞게 동맹 관계의 현대화를 추구했다. 용산 미군본부 이전 합의도 중요한 이유라고 본다. 두 나라 관계에선 국민의 여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계속 노력해야 한다.”

-미국에서 반 FTA 목소리가 높다. 부시에게 한·미 FTA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인 대다수는 FTA가 뭔지 잘 모른다. 미국에서 FTA 관련 토론은 이제 시작 단계다. 처음엔 항상 반대파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게 마련이다. 토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찬성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 것이다. ”

-신임 대사가 정해졌다는데.

“신임 대사에 대해서는 아직 미 정부가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고, 의회의 승인도 받아야 한다. 9월에 떠나기 전까지 FTA 비준과 북핵 폐기 절차를 마무리하고 싶다. 송별 인사는 아직 이르다.”

-한국이 언제쯤 비자면제국가(VWP)에 가입할 수 있을 것인가.

“미 의회에서 지난해 VWP법이 통과되면서 한국이 자격을 얻었다. 나머지는 법령에 정해진 안보 관련 조건을 양국이 갖추는 문제다. 이달 말 양국 전문가가 이 문제로 만난다. 내년 초면 가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대사께서 전시작전권 이전에 대해 재협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발언의 진의는.

“거두절미하고 보도된 것이다. 원래 취지는 한·미 양국의 전작권 이전 합의가 적절했다는 것이었다. 한국도 성장했고 당연히 자국 안보에서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군이 준비할 수 있도록 2012년까지의 단계적 이전 계획을 마련했다는 것이 합의의 핵심이다. 이전 계획은 벌써 실행되고 있으며 계속 차질 없이 진행돼야 한다.”

-한국 생활 중 인상 깊었던 점은.

“나와 내 아내에겐 한국에서 사는 기간이 발견의 시기였다. 우리가 아시아에 산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불국사의 가을뿐 아니라 해인사의 겨울, 팔만대장경, 인천 송도의 바다를 메우는 거대한 건축 현장, 포항의 제철소, 북한산, 북악산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드럼 치는 대사로 한국인에게 알려져 있다. 바쁜 일상 속에 드럼 연습은 언제 하는가.

“아마추어로서 즐기는 게 재미있고, 그동안 같이했던 뮤지션들과 연주한 것도 꽤 흡족했다. 아내가 밤에 시끄러운 소리 내는 걸 싫어한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와의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협연이 특히 힘들었다. 짬짬이 시간을 내 테이프를 들으며 연습했다. 웬만한 R&B나 로큰롤은 연습을 많이 안 해도 거뜬히 할 수 있다.”

-부인이 금속공예가로 유명하다. 작품의 경향이 한국에 오고 나서 좀 바뀐 듯하다.

“아내는 해외 생활 중 각 나라의 문화를 작품에 반영하는 걸 소중하게 여긴다. 러시아에선 호박석을 많이 쓰고, 러시아의 겨울 모티브를 많이 활용했다. 한국에선 대나무 잎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한국적 느낌을 살리기 위해 한지를 소재로 즐겨 이용한다. 미국에 돌아갈 때도 한지를 엄청 많이 들고 갈 것 같다.”

정리=최지영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1974년 예일대를 졸업(러시아학 및 동유럽학)한 후 76년 컬럼비아대에서 국제관계 석사 학위를 받았다. 77년 국무부에 들어가 소련의 마지막 순간을 소련 과장으로 지켜봤다. 94~97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통령 특별보좌관 겸 유럽담당 선임국장을 지냈으며, 98~2001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대사를 거쳤다. 2001~2005년 주러시아 미 대사 재임 때는 러시아 내 민주주의와 인권 확산을 주창해 미 변호사협회가 주는 ‘올해의 대사상(2004년)’을 받기도 했다. 2005년 10월 주한 미 대사에 부임했다. 2005년 12월 관훈토론회에서 북한을 ‘범죄 정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등 직접적이면서도 솔직한 발언을 하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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