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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싸움꾼’ 이세돌 vs ‘컴퓨터’ 박영훈 … 누가 반상의 지존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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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세돌(사진左) 9단의 정복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부분의 프로는 “그럴 것이다”고 대답한다. 한국에서도, 중국과 일본에서도 “2008년은 이세돌이 진정한 강자로 우뚝 서는 한 해가 될 것이다”는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소리에 빙그레 웃는 한 청년이 있다. 그는 바로 지난해 연전연승의 이세돌을 맞아 2패 후 3연승으로 GS칼텍스배 우승컵을 차지했던 박영훈(右) 9단이다. 박영훈은 겸손하게 말한다. “프로는 우승컵 숫자로 말하는 법. 이세돌 9단이 최강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누군가 견제가 필요하다. 내가 그 견제세력이 되겠다.”

 이세돌 9단과 박영훈 9단이 21일 삼성화재배 세계오픈 결승에서 맞붙는다. 우승상금은 2억원. 21일 1국, 23일 2국. 1대1이 되면 24일 최종전을 치른다. 장소는 서울 을지로 삼성화재 본사. 새해 첫 번째로 벌어지는 이 일전이 2008년 바둑계 판도를 전망케 하는 풍향계가 될 것임은 명백하다. 동시에 이 결승전은 ‘전투’와 ‘계산’이라는 기풍의 양대 산맥이 그 정수를 겨룬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이세돌 9단은 6관왕이고, 박영훈 9단은 3관왕이다. 상대 전적은 이세돌 쪽이 13승11패로 약간 앞서 있다. 겉모습에서 이세돌 쪽이 월등히 화려했지만 박영훈도 착실히 내실을 다졌고, 상대 전적이 말해주듯 의외로 팽팽히 맞서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인정하듯 이세돌 9단은 모든 면에서 강해 무적의 이미지를 물씬 풍긴다. 그러나 박영훈 9단은 ‘이창호 9단의 분신’이란 표현처럼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소신산(小神算) 별명도 얻었다. 거기에 그의 내면에 숨어 있는 ‘청룡도’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지금 이 승부는 진정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프로들의 전망을 들어 보자.

 ◆이세돌 9단이 이긴다=조훈현 9단은 “현 바둑계에서 이세돌 한 사람이 우뚝 서 보인다. 감각과 전투력, 수읽기 등에서 고수의 면모를 갖췄다. 아직 그와 맞설 수 있는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승부란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이지만”이란 단서를 달고 있지만 한마디로 이세돌 우세를 단언하고 있다. 자신과 비슷하게 천재적 감각을 소유한 이세돌 9단을 이창호 9단의 뒤를 이어 한국 바둑의 맥을 이어갈 존재로 확실히 점찍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투를 위주로 하는 신예 강자들도 대개 ‘이세돌 우세’를 점치고 있다.

 이세돌 9단의 스승인 권갑룡 7단은 또 다른 면에서 이 대결을 분석한다. 이세돌을 이기려면 펀치력이 강해야 하는데 박영훈은 잘게 썰어가는 스타일이라는 것. 이세돌의 빠른 발을 잡을 수만 있다면 장기전으로 몰고가 박영훈의 정교함과 계산력이 빛날 수 있겠지만 박영훈은 잽에 약한 단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 이세돌은 지금 막 절정의 기량을 보이고 있으며 지난 연말 박영훈에게 고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살인적 스케줄 탓이 컸고, 이제 푹 쉰 만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것. 이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이세돌 쪽이 6대 4 정도로 우세하다고 말한다.

 ◆박영훈 9단이 이긴다=김성룡 9단은 “박영훈은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잠룡이다”고 말하며 박영훈 우세를 점치는 대표적인 인사다. “이세돌이 절정인 것은 사실이지만 주식으로 치면 그는 이미 상종가를 쳤다. 이에 비하면 박영훈은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고 아직 보여줄 게 많다. 지난 연말의 대 역전승을 통해 자신감도 얻었다. 박영훈 쪽이 55대 45로 우세할 것으로 생각한다.”

 양재호 9단도 “오히려 박영훈에게 걸고 싶다”는 쪽이다. 지난 연말 구리(삼성화재배 준결승전)와 이세돌(GS칼텍스배 결승)을 연파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 모습에서 박영훈이 지닌 승부사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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