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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社현대사연구소 발굴 曺灣植.브라운 회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이번에 본사 현대사연구소가 美국무부 관계자료 속에서 발굴한 「조만식-브라운 회견기」「조만식 메시지」등은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있던 해방후 고당(古堂)조만식(曺晩植)의 행적과 정치노선을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조만식-브라운회견기」는 47년 5월21일 재개된 제2차 美蘇공동위원회 사업의 일환으로 6월30일 평양을 방문한 미국측 대표 브라운소장이 7월1일 고당을 방문해 나눈 대화 전문이다.
당시 이 회견에는 브라운과 조만식외에 美군정 하지중 장의 경제고문 번스박사.통역.기록자 등이 배석했고,蘇군정이나 북한측 인사는 참석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자료는▲그동안 증언을 통해서만 알려져있던 브라운과 고당의만남을 문서로 확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둘사이에 오고간 대화전문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북에서 활동했던 관계로 묻혀있던 고당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당은 연금상태였기 때문에 구체적이지는 못했지만 당시 남북한의 정치동향에 대해 대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주요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평가가 주목된다.고당은 김일성(金日成.당시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이 『소련의 꼭두각시』에 불과하고,김두봉(金枓奉.북조선노동당 위원장)은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 소련에 충성하고 있다』고 말했다.또 북한 사람들이 소련식 민주주의형태를 지지하는가라는 브라운의 질문에 대해서는 북한사람의 15%정도만이 공산당을 지지하며,나머지 85%는미국식 민주주의 원칙에 기초한 정부형태를 지지한다고 답변했다.
고당은 남쪽의 정치지도자 여운형(呂運亨.근로인민당 위원장)은민족주의적 성향도 있지만 사회주의로 기운 지도자(65% 사회주의자.35% 민족주의자)로,김규식(金奎植.좌우합작위원회 위원장)은 새로 건설될 임시정부의 지도자가 될 수 있 는 사람으로 평가하면서 여운형과 김규식이 주도하는 좌우합작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반면에 김구(金九)와 이승만(李承晩)은 극우로 평가하면서 임시정부의 최고지도자가 되기 위해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브라운이 고당을 만난 시점은 모스크바 삼상회의(三相會議)결정에 따라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열린 제2차美蘇공동위원회가 진행중인 시점이기 때문에 고당이 美蘇공위.신탁통치문제에 대해 어떻게 인식했는가가 관심의 초점 이 될 수밖에없다. 이 자료에 의하면 고당은 소련이 참가하는 신탁통치는 지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격렬한 반탁시위로 美蘇공동위원회가 결렬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음이 확인된다.
47년 5월에도 고당은 남쪽의 격렬한 반탁운동에 대해 우려를표명하고,美蘇공동위원회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美군정 고위층에 전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이것은 고당이 47년 5월27일인편으로 하지중장의 통역관인 이묘묵(李卯默)을 통해 美군정 고위층에 전달한 「조만식 메시지」에서 확인된다.
또 고당이 美蘇공동위원회 기간에 서울에 가길 희망했던 사실도새롭게 밝혀졌다.고당은 브라운과의 회견에서 蘇군정이 허락한다면美蘇공동위원회와의 협의를 위해 기꺼이 서울에 갈 용의가 있음을재삼 표명했다.그러나 그 가능성은 낮아 스스 로 『서울에 가게된다면 그것은 신의 가호일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를 표명했다.
실제로 브라운은 고당과의 만남이 끝난 후 蘇군정측에 그를 서울로 보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이 자료에는 『토지개혁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고,이것은 임시정부 수립전에 시행돼야 한다』는 고당의 견해가 피력되어 있다.
이번에 발굴된 자료들은 그동안 관심밖에 있던 조만식선생의 행적.사상에 대한 진전된 연구가 진행되는데 기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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