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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홀릭(walkholic) 릴레이 인터뷰 (4) -- 걷기운동의 선구자 선상규

중앙일보

입력

앞에서 걷다 혹은 걸어서 앞서 간다

WH 안녕하세요 선생님. 도보인들 사이에서 걷기 운동의 선구자로 꽤 유명하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간단하게라도 직접 자기소개를 좀 해주실까요?

선상규 (62세, 이하 선) - 선구자라니요, 그런 호칭은 저에게 너무 과분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일찍 걷기를 운동종목으로 분류시켜 보급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긴 합니다만….지금은 제가 걷기연맹에서 총재역할을 맡고 있지만 25년 전에는 한국禪체육회를 꾸려나가는 젊은이였어요. 그때 저는 우리 사회가 더 밝아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방황하는 청소년들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운동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걷기였어요. 걷기는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무료로 마음껏 즐길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걷기를 좀 더 진지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일반인들이 운동의 수단으로 인식할 수 있게끔 열심히 활동해보자 마음먹었죠. 그때부터 뜻이 비슷한 회원들과 함께 걷기 운동이 우리들 삶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강의도 하고 함께 걷기도 하며 오늘날까지 걷기운동 마니아로 살고 있습니다.

WH 25년 동안 ‘워크홀릭’으로 살아오셨으니 그 과정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주로 어떤 활동들을 하셨는지요?

-- 가장 중점을 둔 프로그램은 트레킹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른들을 중심으로 해서 한국의 아름다운 산야를 함께 걷고 이 땅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리드했어요. 청소년들에게 다가가기 이전에 어른들이 먼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방황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돕기 위해서는 어른들부터 충분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산에 오르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히말라야 4,000m이하의 능선을 타고 걷는 트레킹을 도입했죠. 그렇게 활동을 해온 지 어느덧 15년도 훨씬 넘어, 회수로만 170회 이상 되었네요. 지금도 매월 1회씩 실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테마가 있는 걷기를 통해 문화를 익히며 명상을 겸하는 활동은 아주 가치가 높습니다. 걷기를 통하여 역사의 진실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1997년에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 서울서 부터 부산까지 514Km를 걸었어요. 텐트를 짊어지고서 작열하는 8월의 태양아래 걷고 또 걸었죠.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비슷한 생각을 가진 외국의 걷기 마니아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더군요. 그래서 서로의 나라를 넘나들며 함께 걷는 행사를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한답니다. 작년 여름, 네덜란드 걷기 대회에 다녀왔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워크홀릭 기자분이라면 반드시 다녀오셔야 할 행사이니 올해 한 번 다녀오세요. 네덜란드의 걷기대회는 도보인들의 가장 큰 축제거든요. 선진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도보마니아들을 만나서 함께 걸으며 친분을 쌓으니 일석이조로 유익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산책이 생활화 되어있는 그들의 노하우를 열심히 배워오기도 했지요.
각종 걷기협회에서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전문가들을 부지런히 만나고 다녔는데, 그들을 만나기 전에는 그들이 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막상 만나서 대화를 해보니 그들이 만들어가는 건강한 협회가 걷기운동 개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큰 공부가 됐어요.

WH 걷기를 스포츠로 분류하여 홍보한다는 일 자체가 초기에는 좀 낯설었을 것 같은데요 어땠나요?

-- 제가 걷기를 스포츠로 분류해서 열정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이었습니다. 25년 전부터 걷기운동의 가치와 효용성을 사람들에게 꾸준히 알려왔지만 일본이나 네덜란드처럼 확실한 스포츠의 영역으로 정확히 분류시켜서 활동했던 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바깥세상에서는 이미 걷기를 스포츠의 형태로 발전시켜서 엄청난 효과들을 보고 있더군요. 한국인들 역시 걷기를 좀 더 진지한 스포츠로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민하다가 당시 관계부처인 문화체육부를 찾아가 걷기운동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담당과장이 “걷기가 무슨 운동이냐, 보리밭이나 밟으면 되지.”라고 말하더군요. 걷기를 홍보하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걷기스포츠의 인식이 잘 다져져있는 일본으로 갔죠. 그곳에서 걷기운동에 대한 제도와 대회 운영, 진행요령 등 다양한 것을 습득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계속 반응이 싸늘하더군요. 미친놈 소리까지 들었으니까요.(웃음)

WH 지금은 걷기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게 사실입니다. 고생한 보람을 느끼시겠네요?

-- 지금은 걷기대회를 한다고 했을 때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그런 셈이죠. 1995년에 일본 요미우리신문사에서 한국과 함께 경주에서 국제걷기대회를 개최하자는 제안이 들어 왔었는데 따지고 보면 그 대회가 바로 오늘날 걷기 대회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줘서 그랬는지 그때 처음으로 많은 지지를 받아 성공리에 걷기대회를 마쳤어요. 한국관광공사와 경주시청, 동국대학교의 도움이 무척 컸죠. 그 때부터 저는 자신감을 갖고 세계에서 제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네델란드 걷기 축제와 일본의 걷기대회에 반드시 찾아가서 그들의 노하우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국제걷기대회는 네델란드를 비롯해, 벨기에, 영국, 독일, 대만, 일본, 중국대회 등이 있는데 워크홀릭이라면 한 번 쯤 참가해볼만한 훌륭한 걷기 축제들이에요.

WH 워크홀릭의 원조이신데요 (웃음) 다른 운동과 차별되는 걷기운동만의 장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어떤 운동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할 수만 있다면 유익한 것이지요. 다만 걷기 운동은 특별한 장비나 기술이 필요치 않고 장소나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으니 가장 간편하고 안전한 운동이에요. 특히 비만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나 노인들에겐 더 없이 좋은 운동이지요. 당뇨나 고지혈 고혈압 통풍 지방간과 같은 생활습관과 관련된 질환에도 걷기만큼 좋은 운동은 없을 겁니다. 또한 걷기가 미네랄성분의 감소를 막아 칼슘이 체내에서 작동하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로 인해 걷기 운동은 골다공증 예방에도 큰 효과가 있답니다. 하지만 제가 꼽는 걷기 운동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함께 걷는 이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88년도에 제가 교통사고가 났었는데 재활치료를 하면서 걷기운동의 효과를 톡톡히 봤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물리적인 효과 이상으로 심신의 안정을 찾는 데에 엄청난 효과를 본 것 같습니다. 걸으면 마음이 아주 편해지잖아요.

WH 앞으로 걷기 운동 홍보를 어떻게 이어갈 계획이세요?

-- 현재 걷기 운동은 Event성 행사용이나, 양적인 숫자에 연연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도보인들은 이를 바로잡고 걷기운동의 본래 목적을 찾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원래 우리가 갖고 있는 걷기운동의 룰에 따라 질적인 면을 강화해야 돼요. 따라서 테마형 걷기와, 생활형 걷기운동으로 확산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Club형태와 Local형태의 걷기운동 보급에 더욱 힘써야겠지요. 더 많이 걷고 더 열심히 활동해서 많은 국민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WH 널리 소개하고 싶은 도보인이 있다면 한 분 추천해 주세요.

-- 저보다 더 훌륭한 위치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분이 떠오르네요. 그분 별명이 장군님이랍니다. 그 이유는 직접 만나서 알아보세요. (웃음)

WH 릴레이인터뷰 마지막 질문입니다. 걷기를 한 줄로 정의해보시겠어요?

-- 걷기는 생명력의 표현입니다. 걷는 것 자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걷기라는 육체적 움직임을 통해, 더 자유로운 정신세계로 향하는 행위. 이는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잠재해 있는 진실의 길을 찾아가는 행로입니다.

객원기자 설은영 skrn77@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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