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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3억 성금 최경주 “비워야 또 채워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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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경주는 주머니를 자주 비운다.

 미국 PGA 투어 소니 오픈에서 우승한 14일 최경주는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유족에게 3억원을 기부했다.

 물론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틈만 나면 불우 유소년 돕기에 앞장섰고,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엔 자선재단을 만들었다.

 사실 최경주는 매우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공이 똑바로 멀리 가는데도 스윙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불만이다.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되어 있지만 아직도 부족하고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그의 애창곡은 ‘빈 잔’이다. ‘나의 빈 잔에 채워 주∼’로 끝나는 남진의 노래인데, 최경주는 그 빈 잔을 채우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가 채우려는 빈 잔은 여러 개다. 골프 대회 우승뿐 아니라 경제적인 성공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빈 잔을 채우고 있다. 비우면서 채운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다. 잔을 비워야 또 다른 무언가를 채울 수 있다”고 그는 누누이 말했다.

 이렇게 비우는 것이 최경주의 전략이자 성장 엔진 중 하나다.

 “어릴 적 장학금을 준 어린 학생이 대학생이 되어 보낸 감사 편지에 삶의 활력을 느낀다”고 최경주는 말했다. 남에게 베푼 선행으로 최경주는 더 열심히 훈련하고, 목표를 더 높게 잡고, 앞으로 나갈 강한 동력을 얻는 것 같다.

 버리는 것은 기적을 만들어 낸다.

 소년이 선뜻 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5000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성서의 이야기처럼 나누고 나누어도 줄지 않고 오히려 에너지가 샘솟는 것이다. 스무 살이 다 돼서 골프채를 처음 잡은 최경주가 세계 최고의 골프 선수가 된 기적은 이런 비움 때문이었다고 기자는 본다.

 최경주는 미국에 진출해 타이거 우즈를 보면서 자신의 잔을 비울 필요성을 더욱 크게 느꼈다고 한다.

 “우즈가 오랫동안 정상에 있으면서도 목표를 상실하거나 스트레스에 무너지지 않고 계속 최고로 남는 이유는 남을 도우면서 얻는 에너지 때문이란 걸 느꼈다”는 것이다. 우즈는 프로에 데뷔하던 1997년부터 자선재단을 만들어 11년째 소외된 어린 아이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 한국에도 축구 천재, 야구 천재, 골프 천재로 큰돈을 버는 스타가 부지기수다. 스포츠 스타뿐이 아니다. 일부 연예인은 그 자체가 기업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부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최경주처럼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그래서인지 롱런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혹시 잔을 비울 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성호준 스포츠 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