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어린이책] 11살 뚱순이 “누가 놀려도 끄떡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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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인어공주가 된 수진이
박혜경 글, 박지영 그림,
청년사, 224쪽, 8500원, 초등 고학년

외모 지상주의와 기러기 가족 문제 등 사회적 쟁점을 다룬 동화집이다. 동심의 세계에서 막 빠져나와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에 눈을 떠가는 초등 고학년을 위한 일종의 ‘리얼리티 동화’다.

표제작 ‘인어공주가 된 수진이’는 뚱뚱하지만 밝은 성격의 4학년 여자아이 수진이가 좌절과 슬픔을 극복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수진이는 아빠를 꼭 닮았다. 오동통한 볼과 풍부한 뱃살. 아빠 눈에야 “우리 수진이 넉넉하고 딱 보기 좋지”지만, 교실에선 그렇지 못하다. 어느 날 우연히 남자 아이들의 대화를 듣게 된 수진이. “야! 승호, 너, 안 됐다. 우리 반 첫째 뚱뚱이 수진이하고 짝이 되다니.” “난 예쁜 애들이 때리고 꼬집는 건 좀 참겠더라. 뚱뚱한 애들은 왜 그러니?” “수진이 입은 청바지는 꼭 아줌마들 일할 때 입는 옷 같지 않냐?” “코는 안 골지 몰라? 너희들 알아? 뚱뚱하면 코도 더 곤다.” “수진이 손 봤니? 짧고 두툼해.”
 
마음의 상처가 컸다. 열한 살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이었다. ‘죽어버릴 거야’란 생각까지 들었다.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 비결은 ‘살빼기’가 아니었다.

물론 수진이의 첫 번째 결심은 ‘밥 안 먹기’였다. 하지만 딱 한 끼를 굶고 결심은 무너져버렸다. 수진이의 고민을 알게 된 엄마가 콜라와 케이크·아이스크림 등의 간식을 치워버렸고, 매일 저녁 여덟 시 가족들이 함께 운동을 하기로 했지만 눈에 띄게 살이 빠지지 않았다.

수진이의 자신감은 ‘몰두할 만한 좋은 일’을 찾으면서 붙기 시작했다. 치료비가 부족해 심장병 치료를 하지 못하는 영식이 이야기를 듣게 된 수진이. 벼룩시장을 열어 도와줘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낸다. 반 친구들과 힘을 모아 벼룩시장을 준비하면서 수진이는 신이 났다. 밉기만 하던 남자애들과도 친해져버렸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무리지은 날. 수진이는 또 한번 실의에 빠진다.

“어린 네가 참 좋은 일을 생각했구나. 앞으로도 어려운 사람 돕는 일을 많이 해라.” 교장 선생님이 날씬하고 예쁜 여자 반장 보람이만 칭찬했기 때문이다.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은 가족들이 풀어줬다. “우리 인어공주, 속상했구나”라며 수진이의 등을 쓰다듬어주는 엄마. 난파선의 왕자를 자신이 구했는데도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하는 왕자를 지켜봐야만 했던 인어공주가 바로 수진이의 처지라는 것이다. “멍청한 왕자, 가짜 공주, 다 나와서 칼을 받아라.” 오빠의 위로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진짜인 척하는 가짜를 ‘그냥 무시해버리기’로 마음먹는다. 다분히 현실적인 처방이다.

두 번째 동화 ‘기러기 아저씨’는 영어공부를 위해 기러기 가족이 되려고 하는 재호네 집과, 아내와 두 딸을 미국으로 보낸 기러기 아빠 최소망 아저씨의 사정을 번갈아 풀어가며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너도나도 떠나는 조기유학 열풍에 휩쓸리지 못해 도리어 상실감을 느낀다는 요즘 아이들에게 “정말 지켜야 하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던져줄 수 있겠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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