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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 남탓 하기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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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3일 영국 텔레그래프 일요판에 고든 브라운 총리의 기고문이 실렸다. 내각책임제인 영국에서도 총리가 직접 나서 이렇게 입장을 밝히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라는 이야기다. 이날 브라운 총리가 국민 앞에 꺼낸 이야기는 경제도, 정치도 아니었다. 생명에 대한 이야기 즉, 장기 기증이었다.

 그는 매년 1000여 명이 장기를 기증받지 못해 목숨을 연장할 기회를 잃고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거부 의사만 없었다면, 기증 여부를 밝히지 않은 사람까지 잠재적 기증자로 추정해 사후 장기 적출을 가능케 하는 ‘옵트-아웃’ 제도다. 현재는 기증 의사가 분명할 때만 사후 장기 적출이 가능하다. 브라운 총리는 ‘옵트-아웃’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매우 민감한 문제라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다” 며 국민의 의견을 구했다. 이렇게 영국에선 장기기증이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됐다.

 브라운 총리의 기고문을 읽으면서 9일 만난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가 떠올랐다. 영국의 총리도, 세계 최고의 간 이식 권위자도 장기기증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안타까운 현실’은 달랐다.

 브라운 총리는 “영국에선 전체 인구의 24%인 1490만 명이 장기기증을 서약하고, 인구 100만 명당 13명꼴로 뇌사자 장기기증이 성사될 뿐”이라며 “장기기증 성사율이 세계 최고인 스페인이 35명, 미국이 25명, 프랑스가 22명인데 비해 영국의 현실은 너무 열악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서약 인구는 고작 49만 명, 뇌사자 기증은 100만 명당 3명에 불과한 한국 입장에선 영국도 부러울 따름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이 교수를 비롯한 의료진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부족한 장기로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다 보니 생체 이식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병원에서 먹고 자고 10시간 넘게 걸리는 대수술을 매일 하면서도 “그저 할 일일 뿐”이라는 이들 덕에 지금까지 많은 생명이 지켜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에선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고 제도를 지적한다. 문제점은 고쳐져야 마땅하지만, 탓하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생명의 무게와 비교한다면 장기기증 절차의 번거로움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기증 결심이다.

홍주희 인물독자 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