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실용외교의 핵심은 국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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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와 관련, 최근 이명박 정부의 국가안보 정책으로 일부 내외신에 보도된 이른바 ‘1·2·3 안보 공약’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풀어쓰면 ‘1무(無)·2강(强)·3화(化)’인 이 정책은 새 정부의 외교·통일·국방 정책을 모두 아우르는 안보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1무’는 한반도 비핵화와 더 나아가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없애는 것이다. ‘2강’은 한·미동맹 강화와 다자협력안보체제 강화다. ‘3화’는 국방과 군의 첨단화, 정예화, 효율화를 의미한다. 특히 이완된 한·미동맹의 복원을 통해 국가안보의 초석을 다지고 탈냉전의 시대정신인 다자 공동안보의 구현과 튼튼한 국방으로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자는 것이 그 요체다.

국가안보 정책은 ‘현존하거나 잠재적인 적에 대항해 중요한 국가적 이익과 가치를 유지·확장하는 데 필요한 대내외적인 조건들을 창출하고자 하는 정책’으로 규정된다. 이 정책은 국정의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이음새 없는 그물망(seamless web)’으로 짜여 있어 서로 예민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최고통수권자의 균형 잡힌 식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즉 국가안보의 기본이 되는 전략적 마인드를 가지고 자신의 국정철학을 바탕으로, 각 정책 분야의 얼개가 치밀하게 짜여 있는지를 짚어보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를 위한 자질이나 덕목은 무엇일까.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사례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선 모두 43명의 대통령이 나왔다. 그중에는 1906년 러·일전쟁 후 양국의 평화를 중재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 파리평화회의를 주도해 유명해진 우드로 윌슨이 포함된다.

2005년 미국의 갤럽은 여론조사를 통해 로널드 레이건을 역대 미 대통령 중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았다. 일견 뜻밖의 결과였다. 그러나 그가 동·서 냉전을 종식시키고 건국 이래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꿈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안보적 식견으로 본다면 레이건은 윌슨이나 루스벨트에 필적할 위인은 못 된다. 레이건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지방방송국 아나운서를 거쳐 할리우드 무명배우로 연기자 노조위원장이 그의 이력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로 SDI(전략방위구상) 등을 통해 소련을 압박, 와해시키고 대내적으로는 이른바 ‘레이거 노믹스’를 통해 경기 부양을 이끌어낸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이미 오래전에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내놓았다고 생각된다. 베버는 정치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즉 정열과 책임감, 판단력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소임에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 유사시의 통찰력 내지는 판단력으로 부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탈냉전의 불안정한 국제질서 속에서 대외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이 같은 덕목 이상으로 소중한 경구가 있다. 19세기 중엽 대영제국의 패권 절정기에 두 번이나 영국 재상을 역임한 팔머스톤 경이 설파한 국제관계의 실체에 관한 것이다. “국제사회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영원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국가이익이다.” 최고경영자(CEO) 출신 대통령이 될 이명박 당선인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김경수 명지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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