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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예수에게 쌍둥이가 있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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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33면

예수시대의 예수가 살던 집 같은 것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수 있을까? 갈릴리바다에서 북동쪽으로 헤르몬산이 바라보이는 골란고원 지역에 카즈린(Qazrin, Katsrin)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AD 746년에 지진이 나서 폭삭 무너져 긴 세월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 1982년부터 복원작업이 시작되어 예수시대에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꼭 한 번 방문을 권하고 싶은 곳이다. 벽돌에 문패가 새겨져 있는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궁이가 있는 부엌이 있고 그 옆에 농기구 방이 있다. [임진권 기자]

고문헌의 세계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텍스트를 누가 언제 썼느냐고 묻는 것은 좀 어리석은 질문이다. 『노자』를 누가 썼는가? 노자가 썼을까? 그렇다면 노자(老子, Lao Tzu)는 누구인가? 『논어』는 누가 썼을까? 안회(顔回)와 같은 직전제자가 썼을까? 안회는 공자보다도 일찍 죽었는데? 이런 질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질문자들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저자’의 개념을 고문헌에 대해 동일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디두모 유다 도마

‘저자’를 영어로 ‘오서(author)’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오소리티(authority)’ 즉 ‘권위’라는 개념과 동근의 말이다. 독점적인 저작권이 특별한 권위를 갖는 근대사회에서만 저작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저작성의 개념은 고대문헌의 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저작물을 어느 한 특정 개인이 소유한다는 발상 자체가 거부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저작이 종교적 목적을 송양(頌揚)키 위한 것일진대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 자리에 어느 개인이 독점적 자리를 점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저자들이 사용한 가장 현명한 방법은 공인된 저명한 사도의 이름을 빌리는 것이었다.

콥트어 도마복음서의 마지막 페이지. 중간의 큰 글씨가 ‘퓨앙겔리온 프카타 토마스’.

마태복음을 과연 마태가 썼을까? 마태는 누구인가? 세무서에 앉아 있다가 예수를 따라나선 세리 마태(마 9:9, 10:3)인가? 그렇다면 똑같은 상황에서 예수를 따라나선 세리로 기록되고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Levi the son of Alphaeus)는 또 누구인가(막 2:14)? 결론적으로 우리는 마태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 마태복음을 마태가 썼다고 믿는 것은 신학계의 초보적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1세기 말엽 초대교회에는 마태라는 사람이 예수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을 것이고, 그 믿음에 따라 엑스라는 어느 저자가 그 이름을 빌렸을 뿐이다. 마가복음도, 누가복음도, 요한복음도 다 마찬가지다. 마가·누가·요한의 역사적 실체를 확정지을 수 없다는 것은 신학계의 정설이다. 이러한 사실이 복음서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떠한 근거 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텍스트를 ‘도마복음서’라고 부르는가? 도마가 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도마복음서라는 책명은 후대에 편의상 붙인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도마복음서의 경우는, 그 텍스트의 마지막에 책이름이 명료하게 부기되어 있다: “퓨앙겔리온 프카타 토마스”(Peuaggelion Pkata Thomas: The Gospel According to Thomas). 아마도 이 책명은 이 복음서를 전사한 희랍어 서기관이 첨가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텍스트 자체가 살아있는 예수의 말을 디두모 유다 도마(Didymos Judas Thomas)가 기록한 것이라는 서론으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복음서는 최소한 형식상으로는 어떠한 상황에서 누가 기록한 것인지를 정확히 밝혀 놓고 있는 것이다.

우선 도마(Thomas)라는 인물은 공관복음서 속에서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12제자의 리스트 속에 맥락 없이 이름만 적혀 있을 뿐이며(마 10:3, 막 3:18, 눅 6:15, 행 1:13) 그 도마가 어떤 도마인지를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쌍둥이(디두모)라 불리는 도마”(Thomas, called the Twin)라는 명칭으로 명료하게 4번 나온다(요 11:16, 14:5, 20:24~29, 21:2). 그리고 4번 나오는 그의 이미지는 일관된 어떤 상(像)을 그리고 있다. 그 상은 후대 기독교역사에 “의심하는 도마”(Doubting Thomas)라고 하는 매우 중요한 심상의 물줄기를 형성했다.

첫 번째는 예수가 돌로 쳐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곤경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평소 사랑하던 나사로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살리러 가려 하자 제자들이 만류한다. 이때 도마만이 유독 외친다: “예수와 함께 죽으러 가자!”(11:16). 도마는 용기가 있고 신의가 있었으며, 자기 신상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 인간이었다. 공자에게 충직한 자로(子路)와 같은 인간이었다.

두 번째는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예수가 매우 감상적으로 자신의 최후를 예언하며 부활을 암시하는 추상적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알고 있다.” 이때 아무도 반문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예수의 말을 알아들었을 리도 만무하다. 이때 오직 도마만이 외친다: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는 모르는디유.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단 말이유?”(14:5) 적시의 안타라 할 수 있다. 도마는 애매한 이야기들을 못 참는 것이다. 이 도마의 퉁명스러운 정직성에 대하여 예수는 그 유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다.” 예수의 대답은 역시 또 추상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직한 도마에게 더 매력을 느낀다.

세 번째는 예수가 부활하여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났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리고 예수가 사라진 후에 다른 제자들이 예수를 보았다고 말하자,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고 외친다. 8일 후에 예수가 제자들 집회소에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도마에게 이른다: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0:27) 이 말 때문에 마치 도마를 ‘믿음 없는 자’의 대표주자인 것처럼 천박하게 성경을 읽는 자들이 말하지만, 도마는 의심하는 자가 아니라 실증주의자였으며, 거짓을 모르는 진실한 신앙인이었다. 그의 회의를 통해서만이 예수는 진실한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고백은 모든 의심의 구름을 걷히게 만드는 찬란한 상식의 햇살이었다.

요한복음의 도마의 이미지는 이미 시대적으로 선행하였던 도마복음에서 왔다고 사료된다. 요한이 도마복음을 직접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간접적으로 그 이미지가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양자의 도마에 어떤 사상적 연관성이 충분히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마는 과연 누구일까?

도마는 원래 아람어로 쌍둥이라는 뜻이다. 이 쌍둥이를 희랍어로 표현한 것이 디두모(didymos)이다. 따라서 “디두모라 하는 도마”라는 표현은 ‘족발’이나 ‘역전앞’과도 같은 표현으로, 2개 국어의 의미를 중첩시킨 동어반복이다. 도마나 디두모나 쌍둥이임을 나타내는 일반명사일 뿐 그 이름(고유명사)은 아닌 것이다. “디두모 유다 도마”에서 그 이름은 “유다”(Judas)이다. 가롯 유다가 아닌 쌍둥이 유다가 있는가? 복음서에서 유다는 예수의 형제로서만 언급된다(마 13:55, 막 6:3).

그렇다면 이 유다는 누구의 쌍둥이일까? 많은 성서학자들이(Koester) ‘쌍둥이 유다’(Judas the Twin)는 바로 예수의 쌍둥이라고 증언한다. 시리아전통의 도마행전(11장)에는 예수의 제자 도마는 예수의 쌍둥이였다고 확언한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난 예수에게 쌍둥이가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이 동정녀 설화의 허무개그적 측면을 나타낸다. ‘쌍둥이 도마’의 전통은 동정녀 설화와 무관한 별도의 초대교회의 한 설화양식이었고, 도마복음의 저자는 그 이름을 빌려 예수의 친근한 모습을 그리고자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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