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칼럼

스포츠카 운전대 잡은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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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청계천 성공의 추억에 너무 깊이 빠져 있는 것 같다. 대운하나 청계천이나 다 같이 물길 뚫는 일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대운하는 청계천보다 쉬운 사업이다. 잠수교와 양평 쪽의 낡은 다리 두 개 정도만 손보면 된다”는 말(장석효 대운하TF팀장)은 거의 국민을 우롱하는 수준이다.

인수위의 과속·과욕은 신용불량자 구제 방침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고 제때 갚지 않은 사람들을 정부가 왕창 구제해 주겠다고 나선다. 무슨 돈으로 할 것이냐고 물으니 국민 세금(공적자금)이란다. 규모는 10조원, 대상은 720만 명. 다들 화들짝 놀라 입을 쩍 벌리니 몇 발짝 후퇴했다. 인수위는 원금 탕감이나 신용불량 기록 삭제까지 거론했다. 무허가 ‘쩐’ 회사에서 고리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고통받는 사람들까지도 구해줄 생각을 했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엉터리 좌파’라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이런 엉터리 같은 시도는 없었다.

200년 남짓한 역사의 미국이 오늘날 초강국이 된 것은 선진 금융 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미국 자본이 이 땅에서 괜찮은 기업과 은행을 헐값에 사들여 떼돈을 번 것도 금융의 힘이었다. 반도체나 조선·철강 등 다른 산업에 비해 한참 처져 있는 금융을 키우는 출발점이 신용 질서 확립이다. 그런데도 새 정부는 이 질서를 통째 흔들려 하고 있다. 신용은 자신이 관리하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정부가 나설 일이 전혀 아니다. 도덕적 해이만 불러일으켜 금융 질서를 무너뜨릴 뿐이다.

물론 명분은 안다. 금융 거래를 할 수 없는 소외계층에 재활 동기를 부여해 경기 활성화에 일조토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성공한다 해도 그때뿐일 가능성이 크다. 과거의 유사 사례나 잇따른 농어촌 부채 탕감에도 상황이 개선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동통신비 인하 건은 또 다른 과욕이다. 2주 전 인수위는 “통신비 20% 인하 공약을 새 정부 출범 전에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어떻게’다. 인수위는 먼저 정부 주도 방침을 꺼냈다. 그러다 민간 기업의 요금 결정에 정부가 간여하는 게 온당하냐는 반발에 부닥치자 말을 바꿨다. 경쟁 촉진과 규제 완화, 다시 말해 시장의 힘으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인수위는 정보통신부에 이달 중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구체적인 인하 방안을 만들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경제2분과를 이끌고 있는 최경환 간사의 말이 이렇게 오락가락했다. 통신 업계에서는 “이런 게 이명박식 시장경제냐”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인수위는 금리 결정권을 갖고 있는 금융통화운영위와 한국은행에 대해서도 헷갈리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물가도 안정시키고 경기 회복도 꾀하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사람은 없다. 이성태 한은 총재의 머리가 더 하얘지면 좋은 방도라도 생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접는 게 좋다. 고대하던 결과다 싶어도 그건 일시적일 뿐이라는 게 그동안의 경험칙이기 때문이다.

멋진 스포츠카를 갖고 싶어하던 젊은이가 마침내 꿈꾸던 차의 운전대를 잡았다. 얼마나 달리고 싶을까. 인수위원들은 지금 그런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심상복 경제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