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마을/운전에피소드] 발각 난 이별데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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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초록색 소형차가 있어요. 흔치 않은 색이라 길거리에서 눈길을 주는 사람들이 많지요. 몇 년 전 5월 5일이었어요. 헤어진 남자친구를 만나러 차를 몰고 일산에 갔습니다.

그와 헤어진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만나 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일산이었습니다. 지도 하나 달랑 펴들고 찾아갔지요. 방향치에다 운전도 서툰 제가 나타나자 그가 꽤 놀라더군요. 함께 차를 마시고 나서 그가 집에까지 데려다 주겠다더군요. 조수석에 앉은 저는 할 말을 찾지 못해 창밖만 바라봤습니다. 어린이날이라 그런지 자유로는 주차장처럼 변해 있었어요.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던 그때 띠링하면서 온 문자 한 통, “옆에 남자 누구니?” 엄마였어요. 어떻게 알았지, 하는 생각에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혹시 하여 옆을 봤지요. 그런데 헉, 바로 제 옆 차에서 엄마· 아빠가 저를 빤히 보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입을 벙긋벙긋 하시면서. 남자친구가 눈치 못 채게 얼른 문자를 보냈죠. “그냥 친구야. 집에서 봐요.”

완고한 부모님께 오늘 일을 추궁당할 걸 생각하니 식은땀이 흐르더군요. 부모님 차와 다시 마주치지 않도록 일부러 길을 돌아돌아 집에 왔지요.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찾으면서 말이지요. 긴장한 탓에 그에게는 잘 가라는 얘기도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저녁 늦게 들어오셨습니다. 걱정과 달리 기분이 좋아 보이시더군요. 제 차와 비슷한 색깔의 차가 있기에 혹시나 해서 따라왔다는 겁니다. 함께 좋은 곳에 많이 다니라고 얘기까지 해 주시더라고요. 제가 남자친구와 데이트라도 한 줄 아셨나 봐요. 차인 남자친구에게 매달리러 다녀온 건데 말이죠…. ㅠ.ㅠ
 

이영미(29 ·회사원·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1월 25일자 주제는 노래방분량은 1400자 안팎. 성명·주소·전화번호·직업·나이를 적어 1월 21일까지weekend@joongang.co.kr로 보내 주십시오. 채택된 분께는 원고료를 드리며, 두 달마다 장원작 한 편을 뽑아 현대카드 프리비아에서 제공하는 상하이 왕복 항공권 및 호텔 2박 숙박권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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