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출 기업들 ‘무단 철수’ 르포 <하> 서비스 시장을 노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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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 기업의 잇따른 중국 무단 철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제 싼 임금을 노린 임가공 시대는 중국에서도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한국에서 사양길을 걸었던 섬유·완구·신발 등의 업종은 중국에서도 살아남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한·중 경협의 패러다임을 다시 짜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중국과 상생할 수 있는 전략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다. ‘저임 노동력의 국가’라는 시각에 바탕을 둔 기존 중국 전략으로는 중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블루오션 물결을 타라”=중국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서비스 분야에서 다양한 비즈니스가 새로 생겨나고 있다. 중국 서비스 시장에 블루오션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는 것이다. 이 물결을 얼마나, 어떻게 잘 타느냐가 중국 진출 전략의 기본이 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캐주얼스포츠웨어 전문업체인 EXR이 좋은 예다. 2004년 중국에 진출한 이 회사는 대륙 전역에 131개의 독립 매장을 두고 있다. 상하이를 비롯해 우루무치·내몽골 등 오지에서도 한국 디자이너들이 만든 EXR 브랜드 옷이 팔리고 있다. 원장석 EXR 상하이 법인장은 “상하이 유명 상가인 쉬자화이(徐家淮)에서 팔리는 EXR 브랜드 청바지는 리바이스보다 비싸지만 없어 못 팔 지경”이라며 “캐주얼스포츠웨어라는 독특한 개념의 디자인이 중국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금융 시장도 좋은 무대다. KTB네트워크가 대표적인 예다. 2004년 81억원의 펀드를 조성해 포커스 미디어 등 6개의 중국 벤처업체에 투자했다. 이미 118억원의 이익을 회수했다. 투자업체 중 하나인 베리실리콘은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어 대박이 ‘예상’된다. KTB는 308억원에 달하는 제2투자펀드를 조성, 10개 업체에 투자하고 있다.

CJ가 상하이에 설립한 동방CJ는 지난해 1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보다 80%가 늘어난 것이다. 파리바게뜨는 중국의 고급 빵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상하이 등에 30개 매장을 차려 고급 입맛을 공략하고 있다. 양장석 KOTRA 무역관 관장은 “싼 노동력에 안주하는 기업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며 “창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소프트산업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통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라”=제조업체들은 가공 수출에서 벗어나 중국 내수를 직접 공략하는 식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유통 네트워크 구축이 선결 과제다.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의 내복 회사인 진양복장. 1994년 중국에 진출한 이 회사 역시 경영환경 악화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품질에 자신 있었던 이 회사는 내수 공략을 위해 중국 업체의 유통 네트워크를 빌리기로 했다. 그래서 찾은 게 베이징의 유명 내의브랜드 업체인 ‘천하제일방(天下第一坊)’이었다.

“지난해 10월 천하제일방 매장에 ‘이마크’라는 브랜드로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 지금은 15개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일부 매장에서는 판매 일주일 만에 ‘이마크’ 브랜드 제품이 ‘천하제일방’제품보다 많이 팔렸습니다. 천하제일방에서 합작하자고 제의를 해오더군요”
 
이 회사 권기홍 사장의 말이다. 그는 “천하제일방과 50대 50 비율의 유통전문 합작사를 만드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제2의 중국 진출’이라고 표현했다.

정영록 서울대 교수는 “경쟁 중국 업체와의 인수합병(M&A), 과감한 기술개발 투자, 내륙지역으로의 공장 이전,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 등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살아 남아야 한다”며 “특히 기술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칭다오·베이징=진세근·장세정 특파원,상하이=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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